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외곽 야산 자락. 30여 평 크기의 가건물과 좁은 안마당이 개 짖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개들의 짖는 소리가 ‘컹컹’이 아닌 ‘캉캉’이다.
하나같이 가냘픈 소프라노 톤. 철제 우리에는 요크셔테리어, 마르티즈, 코커스패니얼 등 한때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안락한 생활을 누렸을 ‘왕년의 애완견’들이 경계의 눈초리로 이방인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드문드문해진 털, 하얗게 변한 눈, 절뚝거리는 다리 등, 모두 어느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다.
이곳은 강남희(64)씨가 자비로 운영하는 사설 유기견 보호소이면서, 건국대 수의학과 동아리 SAP(Small Animal Practice) 회장 이형찬(26)씨와 회원들이 휴일마다 짬을 내 온종일 봉사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학생들의 역할은 보호소 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130마리 유기견들의 건강 상태를 유지시켜주는 일이다. 배설물도 치우고, 모기장을 새로 설치하며, 망가진 시설도 수리한다.
아직 정식 수의사는 아니지만 병든 개를 돌보다 손을 물리는 등 부상을 입은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보살핌이 거듭될수록, 주인에게 버림받은 상처 때문인 듯 사람을 멀리하던 개들도 점점 경계심을 풀고 꼬리를 흔들며 잘 따른다.
학생들이 이곳의 유기견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4개월 전. 동아리 회장 이씨가 수의학과 출신 선배로부터 유기견 문제의 심각한 실상을 전해 듣고난 뒤부터다.
이씨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일부 주인들 때문에 갈수록 유기견이 늘어나고 있다”며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늙었다고 버리고, 병들었다고 버리고, 털 날리는 게 싫어서 버리는 사람들, 심지어 싫증이 났다며 애지중지 기르던 애완견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단다. 한때는 ‘식구’처럼 대접받았지만 버려질 땐 그저 ‘짐승’취급밖에 받지 못하는 애완견들.
이씨는 “한국 가정의 20% 이상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관련 시장 규모도 2조원에 육박하지만 화려한 애견문화 이면에는 이처럼 끔찍한 유기견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유기견들을 보살펴 주는 봉사활동을 결정하긴 했지만, 막상 뜻을 펼 수 있는 유기견 보호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 공립 유기견 보호소에서는 “어차피 10일 후면 안락사 당할 개들에게 왜 봉사를 해주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수소문 끝에 인터넷 유기견 보호카페에서 활동하는 장혜영(36ㆍ여)씨 소개로 3월 강씨의 사설 보호소를 찾게 됐다.
봉사 시작 4개월 후, 학생들의 열정은 첫 결실을 맺었다. 한국동물병원협회 소속 수의사들의 도움으로 병든 유기견들에 대한 치료가 가능해졌다. 학생들이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이는 개들을 수의사에게 데려가면 완치 될 때까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본격적인 봉사활동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이씨는 “아등바등 살아가기도 바쁜 현실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진하게 맛볼 수 있는 기회”라며 뿌듯해 했다.
그는 “힘든 교과 일정 때문에 주말엔 쉬고 싶은 마음도 큰 게 사실”이라면서도 “봉사활동이 끝나고 깨끗한 우리에서 뒹굴고 노는 녀석들을 보면 피로가 싹 가신다”고 말했다. 이씨는 “녀석들과 헤어질 때, 그 선한 눈망울을 보면 다시 다음 주말이 기다려진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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