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KB금융지주회장 낙점은 누구도 예상 못한 결과였다. 능력을 인정받아 연임까지 성공한 1등은행장(강정원)을 제치고 불과 얼마 전까지 경쟁관계였던 전직 맞수은행장을 회장에 앉힌 것 자체가 쉽게 그리기는 어려운 그림이었다. 하지만 ‘설마’는 ‘현실’이 됐고, 은행권은 ‘황영기 체제의 KB금융지주’를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다.
배경은?
강 행장이 ‘떼놓은 당상’처럼 여겨졌던 지주회장 인선에 지난달 말 황영기 변수가 떠올랐을 때부터 금융권에서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야 무모하게 출사표를 던졌겠느냐’는 관측이 파다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황 전 회장의 ‘정치적 배경’을 떠올린 것이다. 당장 국민은행 노조는 4일 성명을 내고 “MB대선 캠프의 유공자라는 배경을 앞세워 KB금융지주 최고 경영자로 무혈입성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국민은행 이사회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이를 일축했다.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민간은행에 정부 입김이 작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3일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된 국민은행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하루 종일 4명(황영기 전 회장, 강정원 행장,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 정동수 전 국민은행 이사회의장)의 최종후보를 면접한 뒤에도 결론을 모으지 못하고 결국 격론 끝에 표결까지 간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부동표’이었던 5명의 표심이 황 전 회장으로 쏠렸다는 후문이다.
비결은 황 전 회장의 탁월한 프리젠테이션과 ‘회장-행장 분리’ 명분. 달변가로 소문난 황 전 회장은 어떻게 조직을 꾸려나갈 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책임을 질 지 등에 매우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외이사는 “프리젠테이션을 그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강 행장을 뺀 3명의 후보 모두 회장-행장 분리론을 주장한 것도 최종 낙점에 영향을 끼쳤다는 후문이다.
앞날은?
KB금융지주회사는 향후 ‘황-강 투 톱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연임된 강 행장은 2010년11월까지 3년 임기를 보장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회장 탈락에도 불구하고 은행장직은 계속 유지하게 된다.
4일 국민은행 이사회가 황 전 회장을 공식 후보로 선임한 직후, 강 행장은 “황 회장 내정자를 적극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 행장은 황 전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강 행장이 회추위 결정을 존중하고 황 전 회장과 힘을 합쳐 지주사 전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원만한 협력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황 회장내정자의 공격 스타일과, 강 행장의 안정적 캐릭터는 상호보완적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경영전략을 놓고 대립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직책상으론 지주회장이 상급자이지만, 지주 전체 자산의 98%를 장악하고 있는 은행장의 실질적 파워도 만만치 않다.
신한지주의 라응찬 회장이나 하나지주의 김승유 회장처럼 지주회장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가질 경우 별 문제가 없지만, 연배나 조직내 뿌리로 볼 때 황영기 회장내정자에게 라응찬ㆍ김승유회장의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 금융계 고위인사는 “주도권은 여전히 황 회장 보다는 강 행장에게 있다. 내부지지를 받는 강 행장의 협조여부가 황 회장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두 명의 걸출한 선장을 태운 KB금융지주호(號)의 앞날은 당장 회장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조직 내부의 알력 추스리기와 경쟁사들 모두가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외환은행 등 인수합병 전쟁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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