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지음/강 발행ㆍ579쪽ㆍ1만8,000원
지난해 5월 368쪽짜리 전작시집 <드러남과 드러냄> 을 펴냈던 김정환(54) 시인이 “장마에서 장마까지 한 일 년 동안 시에 매달”려서 내놓은 신작시집은 600쪽에 육박한다. 생애 첫 문학상을 안겨준 작년 시집이 “분명치도 않은 내용에 질질 끌려간 형식의 결과”였다면 이번 시집은 “미리 떠오른 (내용과 형식의) ‘와꾸’를 채우려던 노동의 산물”이라고, 시인은 후기에 적었다. 드러남과>
로마 숫자로 나뉘어진 16개 장(章)과 한 편의 보유(補遺)시로 구성된 시집은 역사적 시공간, 정신과 현실을 무시로 넘나드는 광대한 사유로 섣부른 해석을 주저하게 만든다. 완결된 의미의 단위로 분절되지 않은 행으로 편안한 감상을 불허하는 이 시집엔 문맥에서 외따로 떨어져 고고함을 뽐내는 아포리즘도 없다.
하여 시집 속 1만2,000여 행은 분할되지 않는 총체다. 소설가 이승우씨는 “이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재료로 하여 지어진, 수없이 많은 방과 복도의 미로가 있는, 한 채의 웅장한 집”이라고 발문을 썼다.
시인은 기표와 기의의 결속을 믿는, 우리의 언어 관습을 내파하는 일로 집짓기를 시작한다. 고대 문자의 흥망과 현존 문자의 차이를 밝히는 일에 몰두하는 ‘Ⅲ’에서 시인이 품은 전복적 사고의 일단이 엿보인다. ‘알파벳/ 이름이 두운의/ 상형을 벗는 소리글자/ 과정은 아직 불편하다./ 그 알파벳들이 짓는/ 건물은 아직 이중으로 부실하다.// 내게 문자는 아직/ 가면 뒤에 새겨진 글자다./ 상징의/ 계면과 희망으로서 글자다.’(57쪽)
가두리 노릇을 하던 언어가 내파되자 감춰지고 뭉뚱그려졌던 의미들이 제가끔 영롱한 빛을 발한다. 아울러 언어라는 경계선이 지워지면서 의미들이 월경하기 시작한다. ‘생은 의식의 블랙홀을 넘쳐난다. 그것은/ 디지털이 현실을/ 넘쳐나는 것과 같다. 동굴과 파경의/ 응집과 응집,/ 혹은 응집과 응집의/ 불안의 계단이 음악을/ 넘쳐나고, 그래서// 니체에게 무신론은 블랙홀이다./ 마르크스에게 혁명은 블랙홀이다/ 프로이트에게 성은 블랙홀이다.’(47쪽)
해체된 언어로 사유하며 시인은 생활세계를 통과한다. 삶 속 깊숙이 침투한 죽음이 그의 촉수에 자주 포착된다. 책 팔 때마다 입버릇처럼 “우리 양반헌티 야단맞는데, 너무 싸게 팔았다고”라고 말하는 단골 헌책방 여주인. 시인은 그녀가 사실 오래전 남편과 사별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이 집 아저씨/ 헌책 사러 나까마 시장 가셨나보다, 오시기 전에/ 빨리 떠야겠다, 그러며, 서둘러 책값을 치르고, 그러던 어느 날// 기겁을 한다. 그의/ 오래된 사망에, 그 후에도 언뜻언뜻/ 기겁을 한다.’(210-211쪽)
시인은 자서에 “시란 일상을 거룩(하다는 것은 쓸모없음의 최고 단계라고나 할까)하게 만드는, 의미의 감각 체계, 아니 감각의 의미 체계”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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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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