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7일 2010년 남아공월드컵으로 가기 위한 아시아 최종예선의 뚜껑이 열렸다. 조 추첨 결과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북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같은 조에 편성돼 각 조 1,2위에게 주어지는 본선 티켓도 장담하기 힘들게 됐다. 역대 전적은 물론 중동의 모래바람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온 우리 대표팀으로서는 ‘죽음의 조’라는 평가여서 매 경기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상대팀의 전력이야 어찌 할 수 없다 해도 문제는 한국 축구의 내부문제로 귀결된다. 최근 아시아 3차예선의 평가를 둘러싸고 허 감독과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갈등이 감지되고 있다. 기술위가 “주전을 너무 자주 바꿔 경기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평가하자 허 감독은 곧 바로 “선수들의 경쟁은 필수다. 나의 생각대로, 계획대로 계속 가겠다”며 반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 대표팀 전력에 대한 현실인식을 놓고 허 감독과 팬들을 비롯한 주변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것이다. 허 감독은 최종예선 조 추첨 후 “최종예선의 밑그림은 완성했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 밑그림이 어떤 건지 윤곽을 아는 사람은 감독 자신 밖에 없는 것 같다.
팬들과 축구 관계자들은 이해 할 수 없는 전술과 선수 선발에서 대표팀 부진의 원인을 찾는 데 허 감독은 여전히 선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부임 이후 지금까지 데려다 쓴 선수가 40명이 넘는데 무의미한 테스트만 계속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프로팀에서 동계훈련을 시키지 않고 선수를 내줬는데도 조직력을 다져야 할 시간에 정작 실속 없는 선수 테스트만 한 셈이다. 그렇다고 눈길을 사로 잡을 만한 선수를 발굴한 것도 아니다. 최종예선이 코앞(9월10일)인데 주전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전술의 기본 틀이 무엇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허 감독은 유로 2008을 관전하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유로 2008 준결승과 결승에서 본 유럽팀의 공격 빈도와 공격 형태는 우리 대표팀과 차이가 나지 않는데 단 차이가 나는 것은 골 결정력”이라고 했다. 참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다.
골 결정력 부재와 수비 불안이 한국 축구의 고질적 병폐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골 결정력을 둘러싼 책임 논쟁이다. 허 감독은 골을 못 넣은 것을 스트라이커들의 무능력으로 돌렸다. 북한전이 끝난 뒤 골 결정력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전술적으로 많이 준비하고 맞춰봐도 선수들이 골을 못 넣어 주니 답이 없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냈다.
골을 넣는 데는 스트라이커 개인의 능력이 절대적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계속해서 세계적인 팀과의 수준차를 말하고, K리그의 선수층이 얇아서 뽑을 선수가 없다며 선수 탓만 해서야 어떻게 팀을 이끌어 갈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한일월드컵 4강 덕분인지 축구팬들이 아시아예선을 본선 진출을 위한 통과의례 쯤으로 여기고 있는 현실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할 경우 겪을 국민들의 상실감과 좌절감을 미리 헤아린다면 허정무 감독의 현 대표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 또 다시 행운을 기대하거나, 가슴 졸이며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지, 아니면 93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때처럼 어부지리에 의한 기적을 기대해야 하는지 최근 한국축구의 행보에 팬들은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여동은 스포츠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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