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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탕쿠르 6년 만에 전격 구출/ 2002년 대선 후보로 나섰다 피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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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탕쿠르 6년 만에 전격 구출/ 2002년 대선 후보로 나섰다 피랍

입력
2008.07.0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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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붙잡혔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잉그리드 베탕쿠르는 콜롬비아의 뒤엉킨 정치ㆍ사회적 현대사를 온 몸으로 보여준 정치인이다. 언변과 미모를 갖춘 유망 정치인이었지만 인질로 붙잡히면서 국내외의 집중적인 조망을 받았다.

1961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외교관 아버지와 미스 콜롬비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근무지인 프랑스에서 중ㆍ고교와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졸업했다.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 두 자녀를 두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는 등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 89년 이혼과 동시에 콜롬비아로 귀국한 그는 조국의 혼란을 바로 잡겠다며 정치에 투신했다.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해외 유학파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정치인생은 순풍에 돛을 단 것 같았다. 만연한 부정부패 척결을 공약으로 내걸어 94년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녹색산소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98년에는 전국 최다득표율을 기록하며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그는 신선한 이미지를 앞세워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해 2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FARC의 거점인 산 비센테 델 카관으로 유세를 떠났다가 납치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딸의 납치에 충격 받은 아버지는 한달 후 사망했다. FARC가 인질 가운데 최고위 인사인 베탕쿠르를 활용, 콜롬비아 정부측에 동료 죄수 석방 등을 요구하면서 납치 사건은 장기화했다.

올해 3월 FARC가 공개한 사진에서 베탕쿠르는 무표정한 얼굴에 비쩍 마른 모습으로 수갑을 차고 있었다. 이 사진은 예전의 활발한 모습을 기억하는 세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진이 공개되기 전 오랜 인질 생활로 건강이 악화돼 베탕쿠르가 사망했다는 설이 나돌기로 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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