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달 시끄럽더니 결국 7월 들어서자마자 이비인후과를 갔다. 늘 대기실 가득하던 환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소파가 겨울 바다같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직원들이 “어서 오세요!” 소리치니 듣는 사람이 겸연쩍다.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 웬만한 질병 쯤엔 병원 행을 참는다더니 정말 그런 건가, 긴 기다림 없이 진료실로 들어서는 게 별로 기쁘지 않다.
양쪽 귀 속으로 빛과 기구들이 들락날락하더니 고막엔 문제가 없고, 갑자기 시작된 오른 쪽 귀 위의 편두통도 귀로 인한 건 아니라는 진단이 나온다. 오른쪽 귀가 갖고 있는 묵은 문제점 치료를 위해 언제나 같은 처방전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헤어드라이어 비슷하게 생긴 적외선 치료기를 두 귀에 대고 앉는다. 외이도(外耳道), 그 바깥과 안을 연결하는 길로 붉은 빛이 햇살처럼 흘러든다. 이 길이 제 역할을 해주어 내 귀의 문제가 더 심각해지지 않은 걸 테니 고맙다.
척추동물의 귀는 내이, 중이, 외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이는 모든 동물에, 중이는 양서류 이상에 있으며, 외이는 파충류 이상에 있다고 한다. 외이는 귓바퀴와 외이도로 구성되어 있고 귓바퀴는 포유류에만 존재한다고 하니, 인간이 귓바퀴에 구멍을 뚫어 자학하는 건 포유류의 특권을 확인하기 위한 걸까.
병원 문을 나서니 우산살같은 빗줄기가 세상을 식히고 있다. 올 초여름에 유난히 비가 많은 건 4월부터 계속되어 온 촛불시위와 무관치 않으리라. 저만치 길을 따라 선 전경버스들이 추레하다. 엊그제 신문에서 본 김모씨가 떠오른다. 촛불시위를 막으러 출동한 전경 아들이 걱정되어 나갔다가 전경들에게 폭행을 당한 어머니. 오른쪽 귀를 흰 거즈로 덮은 옆얼굴 사진 위, “다 우리 자식인데 어떻게 미워해요”하는 제목이 슬펐다.
‘닭장차’는 ‘죄수 등을 태우기 위하여 철망을 둘러친 차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한다. 저기 타고 있는 젊은이들은 ‘죄수’가 아니니 그럼 ‘등’이란 말인가. 서너 달이면 한 세대가 지나간다는 디지털시대에 나라를 위해 2년씩이나 젊음을 담보 잡힌 아들들을 저런 곳에 있게 하다니, 부끄럽고 미안하다.
비로 인해 길이 늘어났는지, 버스 정거장이 다른 날보다 먼 것 같다. 마침 내가 타야 할 파란 버스 272번이 보인다. 죽어라 달리지만 버스는 이미 움직인다. 야속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 이게 웬일인가. 버스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좋아라 올라 타니 운전기사가 반갑게 “어서 오세요” 한다. 아까 병원에서 들은 “어서 오세요”와는 다른 진심이 느껴진다. 곧 이어 “자리를 잡으시면 출발하겠습니다” 하는 방송이 나온다. 고개를 갸웃거릴 틈도 없이 친절한 안내가 사이사이 이어진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차선을 바꿉니다. 손잡이를 꼭 잡아 주십시오.” “커브길입니다. 커브를 돈 다음 일어나 주십시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크지도 작지도 않게,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도로의 사정을 알려준다. 안내 멘트를 하면서도 냉방을 껐다 켰다 하며 차 안의 온도를 춥지도 덥지도 않게 유지해 주니, 이런 아버지가 있는 집은 행복할 거다, 이런 정부가 있는 나라는 평화로울 거다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차창 밖 풍경이 낯익다. 아쉬운 마음으로 내리는 문 위에 붙은 기사 인적사항을 본다. ‘나 원일’씨. 종일 젖은 몸과 마음을 뽀송하게 해 준 이. 나도 꼭 나 원일씨만큼만, 내 외이도만큼만 되었으면 좋겠다.
김흥숙 시인ㆍ번역가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