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작전.”(잉글리드 베탕쿠르) “한 발의 총성도 없이, 작은 상처 난 사람도 한 명 없이 모두 안전하게 구출했다.”(프레디 파디야 콜롬비아 3군사령관) “그 담대함과 효율성은 역사에 남을 것.”(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국방부 장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억류되어 있던 베탕쿠르 전 콜롬비아 대통령 후보를 포함한 15명의 인질을 별 다른 충돌 없이 구출할 수 있었던 것은‘하케(Jaqueㆍ스페인어로 외통수)’라고 명명한 콜롬비아 정부의 감쪽 같은 눈속임 작전 덕분이었다.
콜롬비아군 정예 요원들은 비정부기구(NGO) 직원으로 가장, 인질들이 잡혀 있는 남부 과비아레주 정글 지대에 접근했다. 이들은 ‘새로운 지도자 알폰소 카노가 우리 헬기를 이용해 인질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반군들을 속이고는 인질들을 빼돌려 헬기에 실은 뒤, 유유히 이륙했다. 순간, 인질들은 자유의 몸이었다.
베탕쿠르는 2일 수도 보고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급박하고 치밀했던 구출작전 당시를 털어놓았다. 이날 오전 4시 30분께 베탕쿠르는 보초로부터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또 움직여야 한다는 절망감과 인질 생활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베탕쿠르는 가슴이 찢어질 듯 했다. 이상하게도 보초는 동행하지 않았고, 강을 건너 정해진 지점에 가라고만 했다.
정해진 장소에 이르자 세 무리로 나뉘어 흩어졌던 인질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인질들의 손은 묶인 채였다. 이내 2대의 흰색 MI-17 헬기가 착륙했다. 헬기에서 내린 조종사들은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이들은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베탕쿠르는 이때까지도 이들이 반군임을 의심치 않았다.
인질들과 이들을 관리했던 반군 지휘관 세사르 등 반군 3명이 함께 헬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이내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4년 간 베탕쿠르를 괴롭히고 모욕하던 세사르가 발가벗고 눈이 가려진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반군인 줄 알았던 헬기 조종사들은 그제서야 “우리는 콜롬비아군입니다. 당신들은 이제 자유의 몸입니다”라고 말했다. 인질들은 울고 끌어안으며 방방 뛰었다. 헬기가 흔들릴 정도였다. 헬기가 착륙해 이들을 싣고 떠나는 데는 딱 22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인질 구출은 콜롬비아 정부가 벌인 치밀한 사전 작업 덕이었다. 산토스 콜롬비아 국방부 장관은 “비밀 요원들과 반군 지도자가 접촉해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면 평화를 약속하겠다’는 조건을 내놓아, 미리 긴장을 완화시켰다”고 밝혔다. 또 비교적 작전 수행이 용이한 남부 지역으로 인질을 이동토록 사전에 조치해 두었다.
FARC를 쉽게 속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급격한 조직 붕괴 덕도 있다. 40여 년 간 조직을 이끌어 온 최고 지도자 마누엘 마루란다가 3월 사망한 데 이어 고위층 지휘관 2명도 최근 사망했다.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지원 덕에 반군의 절반이 소탕됐으며, 남은 9,000여 명은 산악 지대나 정글로 숨어 들어 의사소통이 불가한 상태다. 게다가 그들이 쥔 최고의 카드라 할 수 있는 베탕쿠르까지 놓치면서 FARC는 이제 와해직전에 놓였다.
미국 역시 이날 함께 풀려난 미국인 인질 3명의 안전을 위해 작전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CNN은 국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미리 보고 받고 승인하긴 했지만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백악관이 ‘특별한 지원’을 했으나 밝힐 수는 없다”고 전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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