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년 동안 많은 카피를 써 왔다. 그러나 카피는 주인공이 아니다. 제품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책은 다르다. 글과 글 속의 생각이 주인공이다. 카피라이터와 작가는 비슷하지만, 그래서 전혀 다르다. 나는 언젠가 나의 생각들을 책으로 엮어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책이 줄 수 있는 상상력의 경험을 극대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독자가 직접 책의 페이지를 접거나, 사다리를 탄 후 정답을 다른 페이지에서 찾아보거나, 책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책이라서 가능한 상상력의 경험을 나의 첫 책인 <1cm> 안에 숨겨놓았다.
지금까지 독자로 살아오던 나는 그렇게 저자의 입장에도 서 보게 되었다. 책을 읽고 작가와 교감하는 것과, 책을 통해 독자와 교감하는 것 그 둘은 모두 짜릿한 경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과 인연이 깊어진 나도 책을 멀리하던 때가 있었다. 책을 읽게 되면 나의 생각이 오염되지 않을까 하는 매우 소심하고 오만 방자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책을 멀리했고,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던 나의 아집은 시간이 지나면서 고쳐졌다. 어느 순간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을 통해 지적인 위트를 배웠고, <프레임> 이라는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혔으며,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를 읽고 종교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외의 다른 여러 권의 책들이 나를 만들었고, 나의 생각은 오염되기보다 발전했다. 스크루테이프의> 프레임>
당장 내가 먹는 과일이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비타민을 공급해 주고 있고 활력을 주며 피부를 매끄럽게 한다. 책을 읽는 것도, 지금 당장 어떤 작용을 하는지 눈에 보이진 않지만, 긴 시간 지나보면 분명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었으며 바른 인성을 갖게 했으며 나아가는 길을 제시했으며 행동으로 이끌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생각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참 잘 쓰여진 명언이라고.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김은주 카피라이터 · 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