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기사를 눈에 띄게 배치, 대상자의 신상정보나 대상자를 비방하는 글이 광범위하게 유포되는데도 이를 방치한 포털 사이트들에 대해 원심보다 높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오른 ‘인터넷 마녀사냥’에 대해 경종을 울린 셈이다.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 조용구)는 2일 자살한 여성의 남자 친구인 A씨가 “허위사실 유포로 피해를 입었다”며 인터넷 포털사이트 4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네이버는 1,000만원, SK커뮤니케이션즈(네이트 및 싸이월드)는 800만원, 다음은 700만원, 야후코리아는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이는 네이버 500만원, SK커뮤니케이션즈 300만원, 다음과 야후코리아는 각 400만원을 선고한 1심 판결보다 손배액이 2배가량 높아진 것이다.
2005년 5월 네이버와 다음 등의 초기화면 주요뉴스 항목에는 A씨의 여자 친구인 B씨의 자살과 관련된 기사가 올랐다. B씨의 어머니가 “A씨가 임신한 내 딸을 학대해 결국 딸이 자살했다”는 내용의 글을 B씨의 미니홈피에 올리자 네티즌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해당 기사와 게시물은 인터넷 카페와 개인 블로그 등으로 확산됐고, ‘짐승 같은 놈’ 등 A씨를 비난하는 악성 댓글도 빗발쳤다. 이 과정에서 A씨의 사진과 전화번호, 학력, 직장 등 신상정보가 낱낱이 공개됐고, 포털의 주요 검색어 순위에도 올랐다.
그러나 이후 내려진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에 따르면 임신 여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A씨는 “정신적 고통에다 직장까지 잃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포털이 언론사로부터 제공받은 기사의 제목이나 내용을 적극적으로 특정 영역에 배치해 접속자가 쉽게 접하게 했다면 유사 편집행위에 해당한다”며 포털도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A씨 관련 게시물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피고들로서는 쉽게 불법적인 표현물의 존재 및 부작용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처럼 특별한 경우라면 피해자의 삭제 요청이 있기 전이라도 명예훼손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검색 차단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도 이를 내버려 둔 것은 불법 행위를 방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A씨의 실직은 해당 기사가 게재되기 이전에 발생한 일”이라며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A씨의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청구 부분에만 한정하고 총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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