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강한 의욕을 보였던 공공부문 구조개편 및 공기업 민영화 계획이 많이 주춤해졌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 못지않게 시중에 떠돌던 각종 ‘민영화 괴담’에 영향을 받아 “서민을 죽이자는 것이냐”고 걱정하던 분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 결과 정부는 전기, 수도, 가스, 건강보험 등 4대 부문의 구조개편이나 민영화는 검토ㆍ논의의 대상도 아니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DJ정부 민영화 국민경제에 도움
위에 언급한 4대 부문의 구조개편이나 민영화에는 실제로 많은 기술적 어려움이 따른다. 민영화가 무조건 효율성을 상승시킨다고 장담할 수도 없고, 가격 불안이나 상승이 소비자 후생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민영화된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제어하기 위한 치밀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도 물론이다.
가령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국제세미나에서 미국 UC 버클리 대학의 짐 부시넬 박사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가격상승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발전회사에 소매판매 의무를 지우는 계약조건을 미리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가상실험 결과를 보여주었다.
지난해 필자는 김대중 정부가 민영화한 7개 공기업의 민영화 효과를 분석하여 실제로 민영화가 기업 실적이나 국민경제에 미친 영향을 알아 볼 기회가 있었다. 여러 가정에 의존하는 가상실험과 달리 실제 민영화 과정과 이에 따른 결과를 분석한 것이어서 그만큼 신뢰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분석 대상은 포스코, 두산중공업, 대한송유관, KT, KT&G, 대한교과서, 종합기술금융 등 7개 기업이어서 비교적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고, 기업 규모나 매각 수익의 편차도 컸다.
매각수익은 KT가 12조6,99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KT&G 3조513억원, 포스코 2조7,801억원, 두산중공업 4,290억원 순이었다. 나머지 기업은 1,000억 원대나 그 이하의 소규모였다. 매각 방식은 KT와 KT&G, 포스코는 주식시장에서의 공개매각, 두산중공업과 대한교과서 및 종합기술금융은 경쟁입찰, 대한송유관은 기존 주주 가운데 4개 정유사의 공동매입 형태였다.
흥미롭게도 다양한 규모와 매각 방식을 거친 7개 기업이 민영화 이후 효율성 측면에서는 크든 작든 개선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해당 기업의 재화를 소비하거나 중간재로 이용하는 당사자의‘소비자 후생’은 민영화 전후로 눈에 띄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 같은 결과는 민영화가 해당 기업의 생산성 증가나 효율성 및 수익 개선으로 생산자 잉여의 증가를 누릴 것임은 불을 보듯 하지만, 상당한 소비자 후생의 위축을 대가로 하리라는 일반적 추측을 뒤집었다. 적어도 김대중 정부 시절 이루어진 7개 기업의 민영화는 기업의 수익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추가적 희생을 강요하지도 않은, 국민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는 조치였던 셈이다.
물론 7개 기업의 예를 일반화하여 모든 공기업의 구조개편과 민영화를 통해 사회후생이 증가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미 캘리포니아 전력위기나 미국 동북부의 정전사고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이나 민영화가 땅 짚고 헤엄치듯 쉬운 일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어려운 한국경제 돌파구 찾아야
그러나 시장제도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장기적인 계약을 통해 위험을 얼마나 잘 소화하며, 민영화 기업의 시장지배력을 어떻게 제어하여 소비자를 보호하느냐 등의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한다면 경영의 효율성 제고를 가져올 것이 분명한 공기업 구조개편을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공기업의 구조조정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똑같은 정치적 이유로 공기업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것도 문제이다. 전문가그룹과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함께 듣고 지혜를 모아 공기업 혁신을 이뤄 어려운 한국경제의 돌파구를 찾아가는, 사사롭지 않은 큰 마음이 필요한 때이다.
김현숙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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