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쇠고기하고 노조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그래도 노조에 힘을 밀어줘야 임금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지 않을까"
정치파업의 계절이 다시 왔다. 작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료'로 파업이 이뤄지더니, 올해에는 '미국산 쇠고기 사태'가 주 이슈로 작용했다.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본래의 주제는 항상 뒷전이다.
주제를 벗어난 파업은 올해에도 현대차가 주도했다.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는 이날부터 주간 2시간, 야근 4시간 생산라인을 멈추는 파업에 나섰다. 화학섬유연맹이 확대간부 파업을 시작했고, 이미 파업을 진행 중인 건설노조도 총파업 대열에 합류했다. 노조 내부에서는 이런 파업에 대해 "지겹다" "왜 우리가 동참해야 하는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노조 집행부는 귀를 막고 있다. 실제로 이날 파업을 시작한 현대차 노조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은 조합원도 들어가지 못하게 폐쇄됐다.
정치파업은 해마다 수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몰고온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그 원인을 노조 집행부에서 우선 찾는다. 민노총과 각 산별노조 등 상급단체 집행부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정치파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 대기업의 한 노조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경우 근로조건 개선이 많이 이뤄지면서 80~90년대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강경파들이 대부분 민노총이나 산별노로 몰려갔고, 이들이 자신들의 세력규합을 위해 임금과 정치적 아젠다를 조합해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단 파업을 시작하고 봐야 뭔가 더 얻을 수 있다"는 관행적인 사고방식도 정치파업의 주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금속노조의 파업에서 보듯 교섭전 파업이 결정되는 '이해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임금협상을 위한 교섭이 결렬되면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쳐 파업이 시작돼야 하는 것이 원칙. 하지만 말도 안되는 '한국적 모순'이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도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법과 원칙에 의한 대응을 강조했지만, 쇠고기 사태 이후 정부의 신뢰성이 무너지면서 노조의 강경 파업에 빌미를 작용했다. 남용우 경총 노사대책본부장은 "노사가 만나 임금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협상에서 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 파업이 시작되는 것인데, 이제는 습관이 돼버렸다"며 "정부가 엄정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같은 습관성 파업에 우리 경제가 멍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파업에 대한 손실은 기본이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데 따른 성장률 손실이 1%포인트라는 분석이 이래서 나온 것이다.
정주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조가 정치적인 분위기를 이용해 뭔가 얻어내려는 경향이 클수록 경제 전체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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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타는 해외기업들 속속 脫한국
#다국적 제약기업인 H사, 2006년 노사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철수했다. 이 회사는 표면적으로 한국을 연구개발(R&D)기지로 삼기 위해 생산시설을 옮긴다고 했지만 몇 년간 지속되온 노사분규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식음료 종이팩을 생산하는 스웨덴계 T사, 지난해 극심한 노사분규 이후 경기도 여주공장을 철수하고 기본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소만 남겼다.
반복되는 노사 분규가 국내에 투자한 외국기업들의 발길을 돌려세우고 있다. 지나치게 높은 임금인상 요구, 노조의 경영권 참여 요구, 상급노동단체의 간섭, 원칙없는 노사분규 해결 등 한국의 노사관계 현실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 그들이 지적하는 한국 철수 이유이다.
한국을 떠나는 외국기업들의 노사현실에 대한 불만은 2일 전경련 국제기업위원회에 참석한 외국기업 대표들의 입을 통해 보다 분명해졌다. 주한 외국 기업인들은 이날 우리나라의 '경직된 노사관계'를 투자 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 참석자는 "한국의 경직된 노사관계가 유연화, 선진화되지 않고서는 외국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경직적인 한국의 노동제도가 가장 큰 애로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네슬레, 한국테트라팩, 한국화이자제약 등 외국기업들은 최근 단순히 노사 문제만을 이유로 생산시설을 철수했다. 까르푸, 월마트 등 외국계 대형 유통업체들도 노조와 대립관계를 보이다 결국 한국을 떠났다. 한국오웬스코닝, KOC, KGI증권, 한국테트라팩, 레고코리아 등 외국계 업체들은 노조와의 대립이 격해지자 직장폐쇄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국가 이미지 추락과 외국 자본의 철수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세계에 생산시설을 가진 다국적 기업 입장에서는 노사분규와 과도한 노조 요구 등이 계속된다면 언제든지 해외이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한국에 투자했다가 철수한 외국기업의 당초 투자규모는 2007년 41억2000만 달러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2004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투자 철수 규모가 연평균 11억4,000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불과 3년 사이에 상황이 변한 것은 그만큼 국내 기업환경이 급격하게 악화됐다는 것을 뜻하고 그 중심에는 노사분규, 임금상승 등 노동 문제가 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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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되는 파업… 전문가 제언
전문가들은 매년 반복되고 있는 파업을 방지하기위해서는 파업을 노사간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노동조합이 이미 단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된 만큼 노조가 제기하는 사회적 이슈를 포용하는 동시에 이를 조율할 수 있는 조정기구를 둘 필요가 있고, 특히 노사정 3자간의 대화에서 배제된 민주노총을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태주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올해 파업은 쇠고기 문제와 연계된 정치 파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지만 민주노총을 대화에서 배제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법과 원칙만 강조하고 충돌이 발생할 경우 개입하겠다는 공안적 노동정책으로는 매년 되풀이되는 파업을 막을 수 없다. 실제로 정부는 현대기아차 파업의 경우 교섭결과 자체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도 현대기아차가 알아서 풀어라는 식이다. 노조는 금속관련산업 전체 조합원들을 대표해 교섭에 나서는데 정부는 개별기업만 바라보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교수
올해 같은 정치파업은 노동계가 자제해야 한다. 노동계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정치의 직접적 액터(Actorㆍ행위자)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정치권은 여야 모두 노동문제를 국회 차원에서 논의함으로써 노동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 노동문제는 민주노동당 만의 고유 업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무현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국가단위의 대화기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 정부에서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놓고 있지만 민주노총이 없는 반쪽짜리 기구일 뿐이다. 민주노총을 대화파트너로 끌어들여 노사정간의 대화기구를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구도로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갈 여건이 되지 않는 만큼 정부가 전향적인 사고를 갖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대화기구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파업이 개별 기업과 사업장의 노조간의 문제라기보다 산별노조와 기업단체, 그리고 정부와 상급단체간의 문제인 만큼 의제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정리=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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