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신호위반으로 위험을 초래해 놓고도 오히려 시비를 걸 태세다. 위반 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태연하게 잘못을 외면하면서 파렴치하게 행동하는 게 정말 문제다. 이렇게 운전할 때 항상 느끼는 것이 교통질서에 대해서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국력에 비해 국민의 의식 수준은 괴리가 존재하는 것인가?
선진국을 지향하는 일등 국민답지 않은 위반이 많다. 신호 위반, 새치기와 주ㆍ정차 위반 등은 어느새 일반화되어 관행처럼 굳어 버린 느낌마저 든다. 우리의 공공 문화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왜 이럴까.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가. 내가 본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행하는 이 같은 낯 뜨거운 일들을 보고 혹은 당하고 있노라면 참담한 심정이 든다. 이런 노인들을 보면 공공 의식을, 젊은이를 보면 교육을 돌아보게 된다.
그 이유를 따져 보면 문제가 많다. 우선 대표적인 것으로 준법정신과 교육을 들 수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위인들과 선각자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나름대로 교육사상을 내 놓았다. 그들은 정치 권리가 인간의 천부적 권리이며, 가장 중요한 자연적 권리라고 강조했다.
역사를 보면 근대 이후 인간다운 삶과 권리를 위한 투쟁은 '계몽'으로 집약된다. 이를 사회제도의 근간인 교육과 법률에 의해 실현하려는 것이 기본적인 국가 운영의 패턴으로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디서부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중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중국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보통 마오쩌둥(毛澤東), 공자(孔子),진시황(秦始皇) 등이 꼽힌다. 진시황은 중국에 어떤 의미인가? 수 백 년 동안 천하의 숙원인 통일을 이루어 도탄에 빠진 인민에게 안정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과 그것이 후일 중국 대륙 통일의 근간을 마련했다는 공적이 높이 평가 받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이 진시황으로 하여금 그 같은 위대한 일을 하게 만들었던가. 대체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 리더십인가. 아니면 참모(브레인)를 잘 두어서였을까.
여기서 무엇보다 법가(法家)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진(秦)은 상앙(商鞅), 이사(李斯) 등으로 대표되는 법가의 이데올로기를 천하 통일의 원동력을 삼았다. 법가는 유가(儒家)와는 달리 옛날의 국가가 본받아야 할 모델이었다, 법가는 그러나 옛날로 돌아가지 않고 현재를 중시했다. 법가의 개혁주의자들에게 있어 개혁은 과거를 본받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항상 혁명이 필요했다. 그러기에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효율은 즉각적이었으나 민심(民心)이 견뎌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 이러한 엄청난 효과를 나타내었던 법가와 법치는 중국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부활한 것은 1960년대의 문화혁명 때였다. 2000년도 넘는 세월 속에 깊숙이 묻힌 채로 지나갔다. 대신 중국은 그 동안 ‘인치(人治)’를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어째서 법치의 종주국인 중국이 법치를 외면했을까. 그것도 그 오랜 세월을 철저하게 말이다. 진정 의문이다.
이상옥 전주대 교수ㆍ중국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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