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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8> 리하이의 피의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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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8> 리하이의 피의 맹세

입력
2008.07.0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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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5월. 진사(金紗)강을 건넌 홍군은 쓰촨(四川)성의 수도인 청두(成都)방향으로 북상했다. 좁고 꼬불꼬불한 전형적인 쓰촨의 오솔길이어서 이백(李白)이 일찍이 “쓰촨의 길을 걷는 것은 푸른 하늘을 기어 올라가기 보다 어렵다”고 말한 것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그러나 행군의 어려움이상으로 홍군을 괴롭힌 것은 리(蠡)족 지역이 가까워지면서 생겨나는 불안감이었다. 특히 소수민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공격을 받더라도 반격하지 말라’는 명령이 큰 부담이었다.

쓰촨출신으로 선두를 맡은 류보청(劉佰承) 앞에 옷을 홀딱 벗은 일개 중대의 부하들이 나타났다. 리족의 습격으로 옷과 소품을 다 털렸다는 것이었다. 얼마 가지않아 반쯤 벌거벗은 일련의 리족이 몽둥이와 낫 등을 들고 길을 막았다.

통행료를 내라는 것이었다. 돈을 주면서 통역에게 “홍군은 국민당 한족 군벌과 싸우는 농민들의 군대”라고 설득을 했다. 그러자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검은 천을 두른 근엄한 얼굴의 두목 같은 사람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류보청이 그에게 홍군을 설명하자 그는 도와주겠다며 의형제 맺기를 제안했다. 류보청이 흔쾌히 응하자 그는 자신들의 관습에 따라 붉은 수탉을 한 마리 잡아 그 피를 두 사발에 나눈 뒤 함께 마시자고 했다. 그곳이 리하이(蠡海)라는 호숫가였기에 이를 ‘리하이의 피의 맹세’라고 부른다. 류보청은 형제애의 표시로 자신이 차고 있던 권총을 풀어 리족 부족장에게 선물했고 홍군은 그의 호위 속에 무사히 리족 지역을 통과할 수 있었다.

■ 한족과 소수민족의 평화로운 공존

리하이로 향했다. 가까워지자 나폴레옹식의 모자를 쓴 여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리족의 복장이었다. 기념관에 도착하자 여러 차들이 와 있고 사람들도 많아 놀랐다. 대부분의 장정 기념관은 교통이 불편한 오지에 있어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관람이 아니라 기념관 자체를 위한 기념관들이 많았다. 혹 있는 관람객도 대부분 직장 등에서 단체로 관람 온 ‘행사용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리하이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우선 주말이라 가족단위 여행이 가능한 날이었고 리하이가 대도시인 청두로부터 그리 멀지 않아 찾아오기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기념관 문 앞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앞에는 설산이 보이고 100m미터도 안 되는 곳에는 리하이라는 아름다운 호수와 숲이 자리잡고 있었다. 장정 기념관 관람이외에도 자연환경이 가족들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기념관 마당에는 검은 두건을 쓴 리족 족장이 류보청과 피의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그 둘이 앉아 술잔을 나눈 돌을 현장 보존하고 있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장정 등 글들을 공식적인 중국어인 간자체 외에 리족의 전통언어로도 써 놓은 것이었다.

그만큼 리족을 존중한다는 증거였다. 기념관에는 류보청이 리족 부족장에서 선물한 권총, 홍군의 깃발을 들고 있는 리족 부족장의 사진 등 소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또 이를 관람하며 메모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 집단과 개인 자율성의 딜레마

기념관을 나와 오른쪽의 리하이 호수로 향했다. 여러 가족들이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산책을 하거나 자리를 깔아 놓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한쪽 물가에는 까맣게 탄 리족 어린이들이 미끼도 없는 원시적인 낚시대로 물에 들어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수 속에 난 그 옆의 한 나무에는 아마도 청두에서 놀러 온 것으로 보이는 하얀 얼굴의 같은 또래 한족 어린이들이 나무에 매달려 낚시장면을 구경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낚시하는 리족 어린이들의 얼굴이 73년 전 리족 족장의 얼굴로, 그리고 나무에 매달린 한족 어린이들의 얼굴이 한족 홍군지휘관 류보청의 얼굴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어린이집단이 바로 옆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은 리족과 한족 홍군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하기로 했던 리하이 협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차를 타고 리하이를 떠나자 여러 생각들이 엉키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리하이의 맹세는 홍군의 소수민족 정책과 소수민족과의 우호적 관계라는 점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사건이다.

그러나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痼?당시 리족은 노예사회였으며 리족 부족장은 노예주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계급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홍군지휘관이 무사통과를 위해 노예주와 의형제를 맺으며 노예사회라는 비인간적인 현실에 눈을 감은 것이다. 과연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소수민족의 자율성, 소수민족의 문화의 존중이라는 이름 하에 노예제를 용인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그른 것이라는 논리 하에 이들의 전통에 개입해 노예제를 혁파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개인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집단에 대해 개인의 자율성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집단의 자율성을 파괴하고 개입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집단의 자율성을 지켜주기 위해 개인의 자율성이 짓밟히는 것을 묵인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개인의 자율성과 집단의 자율성간의 딜레마이다.

■ 상반된 리족과 티베트식 해결방식

생각이 이같이 발전하자 장정도중 터져 나온 티베트문제에 생각이 미쳤다. 이에 대한 나의 지식은 ▲독립국가 티베트를 중국의 홍군이 1950년대에 침공해 점령했으므로 독립을 허용하거나 더 많은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티베트는 이미 청나라 때부터 중국에 합병됐고 다만 20세기 초 제국주의에 의해 중국의 힘이 약해지자 영국이 침공해 점령했던 것을 홍군이 다시 되찾은 것에 불과하다는 두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도이다.

특히 후자에 대해선 홍군 점령전의 티베트는 사원이 다수 농민과 민중을 지배하는 봉건사회였다는 점에서 홍군은 봉건적 압제로부터 티베트민중을 해방시킨 진보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주장을 더 알고 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에 대한 역사성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하기에는 지식이 모자란다. 다만 티베트의 더 많은 자율성에 대한 요구는 중국정부가 당연히 귀 기울여야 하는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문제와는 별개로 이 같은 요구를 중국정부가 물리력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잘못됐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수많은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중국이 티베트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물리적 대응 방식이 아니더라도 시간은 중국편이다.

많은 티베트의 젊은이들은 이미 티베트의 언어와 문화를 잊은 지 오래이며 이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최대무기는 많은 한족들의 티베트이주와 경제력 장악이다. 이 점에서 물리적 대응은 중국을 위해서도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주목할 것은 홍군이 리족과 티베트에 취한 정책간의 대비이다. 홍군은 리족에 대해서 리족이라는 소수민족의 자율성을 지켜준다는 이름아래 노예제라는 개인 자율성의 파괴를 외면했다.

그러나 티베트의 경우 봉건제로부터 개인의 자율성을 해방시킨다는 이름아래 티베트라는 ‘소수민족’내지 집단의 자율성을 침해했다. 즉 정반대의 정책을 취한 것이다. 리족식 해법도 문제가 있지만 티베트식 해법역시 손을 들어줄 수는 없다.

아무리 봉건적 질서가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티베트의 다수민중이 바라지 않는데 외부세력이 “그것은 틀린 것이니 내가 대신 해결해 줄 게” 하고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거 서구제국주의가 제3세계의 식민화를 “낡은 비인간적 질서로부터 해방시켜주고 문명화시켜 주기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한 것이 잘못됐듯이 이 또한 마찬가지 이치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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