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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14> 나는 왜 공화당을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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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14> 나는 왜 공화당을 택했나

입력
2008.07.02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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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난 250년 동안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 정치체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1945년 해방 이후 거의 50개의 당이 생겼다 사라진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민주당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 (1800년) 토머스 제퍼슨이 만든 민주공화당 (Democratic Republic)이 그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제퍼슨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독립선언서를 쓴 학자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명문 버지니아주립대 (University of Virginia)를 세웠고, 제 2대 애덤스 대통령 당시 부통령을 지냈다.

뒤이어 대통령에 두 번 연속으로 당선된 영웅이었는데, 불행히도 200년이 지난 뒤 샐리 허밍스 (Sally Hermings) 라는 어린 흑인소녀 노예와 불륜의 관계를 맺었고, 그 뒤로 오늘날까지 수 백 명의 허밍스 가족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공화당은 초대 조지 워싱턴과 함께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 받는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0년에 세운 정당이다. 그래서 지금도 공화당 사무실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링컨 대통령의 커다란 초상화다. 물론 민주당 당사에는 토머스 제퍼슨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아이러니컬 한 사실은 공화당의 창시자 링컨이 흑인노예 해방을 위해 남북전쟁까지 치렀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90% 이상의 흑인이 공화당을 떠나 민주당 편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 밖에 다른 소수민족들 (라틴계, 유대계, 동양계) 도 거의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한다.

그러면 동양계인 나는 어째서 공화당을 택했나. 그것은 공화당(보수) 과 민주당(진보) 의 가장 근본적인 이념, 특히 경제정책의 차이 때문이었다. 미국의 근본적인 경제정책 중의 하나는 빈부차를 최소화하고 탄탄한 중산층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는 데 있어 두 정당은 그 방법론이 다르다. 민주당은 정부가 그냥 내버려두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기 때문에 부와 빈곤이 세습된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정부에 의지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크고 강한 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다.

반면 공화당은 경제성장에 의한 일자리 창출로 빈곤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지나친 퍼주기 식 분배는 근로 의욕을 저하시킨다.

민주당 출신 지미 카터 대통령 때 얘기다. 사람들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부를 축적했다고 믿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들이 가진 재산의 상당 부분을 마땅히 정부에 환원해서 착취 당한 빈곤층에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배의 정당성이 힘을 얻게 되면서 생산성은 저하되고 놀고 먹는 계층이 늘어나는 사회가 됐다. 미국 내 반 기업 정서로 인해 기업들이 투자를 아예 포기하는 사례가 생겼고 일부는 인건비가 싸고 건실한 외국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카터 행정부는 계속적인 분배 요구에 예산이 부족하게 됐고, 이를 기업들의 세금으로 충당하게 되었다. 상위소득세를 70%까지 올렸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국방비까지 삭감해야 했다.

나는 맨 손으로 태평양을 건너와 피눈물 나는 고학을 했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분배 혜택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심히 살았고 꼬박꼬박 세금도 납부했는데, 단지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빈둥빈둥 놀면서도 정부 혜택을 받는 일부 저소득층을 보면 화가 치밀었다.

캘리포니아의 농촌에는 일손이 모자라 멕시코에서 버스로 몇 천 명씩 인부를 데려다 쓰면서 건강한 청년들이 직장을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또는 아이가 둘 이상인 미혼모 (Single Mom) 는 직장을 다닐 수 없다는 이유로 (더 웃기는 것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는 이유로) 정부에 손을 벌려 남들이 애써 번 돈을 그냥 분배 받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살면서, 불쌍한 처지의 미국인들을 도와주는 것은 환영하지만 이런 지원은 적당한 선에서 제한해야 된다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공화당의 정책이다.

다행히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은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제일 먼저 최상위 소득세 70%를 39% (현재도 39%) 로 대폭 삭감했다. 나는 당장 공화당에 입당했고, 그 후 공화당 출신으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드는 부자 백인 도시인 다이아몬드바 시의원으로 출마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내 생각이 그들 생각과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초선의원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하루는 내 지역구 사무실에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는 백인우월주의자 (White Supremacist) 였고 未秀?집안은 대대로 공화당을 지지하는데 당신 같은 동양 사람이 백인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수치스럽다며 다음 선거에는 출마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속으로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미친놈이 아직도 활개치고 다닌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에는 일본계 시민단체 (Japanese American Citizens League) 에서 나를 잠깐 만나자는 요청이 왔다. 주로 일본계 2세, 3세로 구성된 이 단체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나를 찾아온 이 단체 소속의 여자 세 명과 남자 한 명은 내게 인종차별 정당으로 알려진 공화당을 즉시 탈당하고 민주당으로 옮기라면서, 그렇게 하면 적극 돕겠다고 제안했다. 물론 나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 때부터 나는 그들과 계속 마찰이 생겼고, 선거 때마다 그들은 내게 등을 돌렸다.

공화당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나더러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하고, 같은 동양사람들은 공화당을 당장 탈당해 민주당에 가입하라고 요구하고, 한국은 이런 인종 문제가 없는 단일민족 국가라서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무렵 한국 신문을 보니 그 조그만 나라에서도 지역감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엿보게 하는 기사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는 인종 문제가 없어 정치가 쉬울 줄 알았더니 대신 지역감정이 고질적인 정치사회적 문제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역시 정치는 어디를 가나 계층이나 파벌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절대로 쉬운 경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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