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얼룩졌던 촛불집회가 평화적 시위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1일로 집회 시작 두 달을 맞으면서 상시적 비폭력 시위로 장기화 할 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촛불집회를 주최하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측은 ‘비폭력 촛불집회를 일상화한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대책회의 집행 책임자와 참가 시민단체 대표들이 모두 모여 촛불과 경찰 사이에 방벽을 쳐 인간 방패 역할을 하겠다”며 비폭력 의지를 나타냈다.
일단 비폭력 시위의 싹은 ‘종교의 힘’이 틔웠다. 이날 촛불집회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와 수녀들이 이끌었고, 대책회의 측은 한발 물러섰다. 신부와 수녀들은 시국 미사를 지내며 ‘비폭력’을 호소했고, 거리 행진도 청와대와 정반대 방향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행진 후 시위대를 향해 “내일도 있으니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자”며 자진 해산을 설득했다. 여느 때처럼 종각으로 떠나려던 일부 시위대도 신부들의 설득에 집회를 끝낸 뒤 흩어졌다. 지난달 30일에 이어 이틀 째 시위대와 경찰은 충돌 한 번 없이 집회를 마무리했다.
사제단의 등장을 대책회의 측은 크게 반기고 있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신부님들이 나선 것은 비폭력이 폭력을 이긴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줬다”며 “경찰과 정부를 향해서도 강경 진압이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대책회의는 그 동안 폭력 시위를 제지하려다가도 일부 과격 시위대의 강경 행동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로 인해 ‘폭력 집회를 주도했다’는 비난과 ‘장악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책회의는 종교계가 촛불집회에 가세해 준 것만으로도 한시름 놓는 분위기다.
경찰 고위 관계자도 “자진 해산까지 시켰으니 경찰이 할 일을 신부님들이 해준 셈”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종교행사와 촛불집회를 분리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 관계자는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미사 등 종교 집회와 이후 거리행진은 종교행사로서 존중하겠다”며 “하지만 대책회의가 주최하는 촛불집회로 바뀌고 또 다시 폭력과 불법이 난무하면 엄정 대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천주교 외에도 개신교계 시국기도회(3일), 불교계 시국법회(4일)가 잇따라 예정돼 있어 한동안 비폭력 시위 분위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2일에는 총파업을 시작하는 민주노총이 촛불 집회에 합류할 예정인데 이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 지가 문제다. 아울러 5일로 예정된 대규모 촛불집회는 비폭력 시위 정착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대책회의 장대현 대변인은 “5일 행사는 대책회의와 종교계, 정치권이 같이 주도할 계획”이라며 “최대한 폭력을 없앤 집회를 이어가도록 할 것이며 만약 경찰이 이를 강경 진압한다면 강한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편 “종교계는 비폭력을 외치지만 과연 강경 대응을 주장하는 세력이 이를 받아들일 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주최 측도 6ㆍ10 행사 때처럼 대규모 인원이 모인 상황에서 거리행진만 하고 행사를 끝낼 경우 얻는 게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청와대로 향하지 않으면 내부 반발이 거세져 결국 폭력 시위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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