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에 대한 제재를 외치고 있지만, 이웃 남아프리카공화국만큼 짐바브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 아프리카 최대의 경제대국인데다 정치적으로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를 비폭력으로 극복한 흑인해방의 성소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서방은 물론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역내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남아공을 주목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짐바브웨 사태가 4개월이 다되도록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별 말이 없다. 이 때문에 짐바브웨 사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이집트의 홍해 휴양지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는 무가베를 제지하지 못한 음베키 대통령의 실책을 성토하려는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1일 음베키 대통령이 무가베의 고삐를 죄지 못하는 이유로 둘 사이의 개인적 관계와 짐바브웨 사태가 남아공 정세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요인을 지적했다.
음베키 대통령이 무가베와 인연을 맺은 것은 무가베가 백인에게서 막 정권을 탈취한 1980년이었다. 음베키가 넬슨 만델라가 이끌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일원으로 망명생활을 하던 때였다. 당시 무가베는 억압받는 흑인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음베키에게 조언하는 위치였다. 짐바브웨와 남아공의 격변의 시기에 형성된 둘의 동지애가 음베키 대통령이 짐바브웨 사태 개입을 주저하게 하는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짐바브웨 사태가 남아공 정세에 미치는 현실적 이해 득실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짐바브웨 야당의 정치적 힘은 ANC가 이끄는 남아공 집권 연정의 한 분파이자 남아공 최대 노조인 남아공노총(COSATU)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짐바브웨 야당인 민주변화동맹(MDC)의 모간 창기라이 당수 역시 노조 출신이다.
그러나 남아공노총과의 관계가 좋지 못한 음베키 대통령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짐바브웨의 야당 승리가 남아공노총을 고무시켜 그렇잖아도 취약한 경제를 더욱 나쁘게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남아공은 300만명에 달하는 짐바브웨 난민으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된 상태다. 연일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인종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남아공으로서는 짐바브웨 정권이 안정을 찾아 더 이상 난민이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창기라이 당수에 대한 음베키 대통령의 부정적 선입견도 제기된다. 영국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사색적이고 정적인 음베키 대통령과 노조 출신으로 정규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창기라이는 출신 배경이 상이하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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