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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성의 붕괴, 중도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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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성의 붕괴, 중도의 붕괴

입력
2008.07.02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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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다. 참 피곤하다.

우리 사회에서 보통사람으로 살아가기는 정말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볼 때도, 점심과 저녁에 지인들을 만날 때도, 늦게 귀가해 마감 뉴스를 볼 때도 피곤하다. 강경진압과 폭력시위로 얼룩진 장면들을 계속 보는 것도 우울하지만, “너는 어느 편이냐”고 끊임없이 압박하는 사회 분위기가 더더욱 가슴을 무겁게 한다.

정파나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한국일보 편집국 지면회의도 그렇다. 마치 “나는 어느 편일까”를 자문자답하는 구도의 고행처럼 느껴진다. 한편엔 시위대가 전경을 구타하는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린 조선 중앙 동아가 놓여있고, 다른 쪽에는 전경들이 방패로 시민들을 내리찍는 장면들이 실린 한겨레 경향이 있다.

편집회의는 격론으로 춤을 춘다. “나라 경제를 생각하면 이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 “아직 멀었다. 말로는 사과하지만 언론장악 시도, 표적 수사 등 구시대적 행태에 머물고 있다” “시위의 폭력성이 도를 넘었다” “강경 폭력진압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등등.

논쟁이 이루어지면서 “언제까지 거리에만 맡길 수는 없다. 국회로 갈등을 끌고 들어와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리고 언론이 한편을 대변하는 갈등의 당사자가 되서는 안 되고 가운데 서서 대립의 폭을 좁혀야 한다는 당위론에 도착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기사 중 하나가 ‘외눈박이 저널리즘도 사태 악화 부추긴다’(30일자 5면ㆍ라제기기자)였다. 한국 언론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기보다는 자기 시각에 입각, 주의ㆍ주장을 내세우는 ‘주창 저널리즘’(Advocacy Journalism)에 매몰돼 갈등과 혼란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는 우려의 글이었다.

그리고 여야를 질책하는 기사(4면)도 실었다. 정부 여당에게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기희생, 절제의 미덕을 보여 국민에 감동을 주라고 했고 야당에게는 전략도 없이 거리를 기웃거리는 저차원의 정치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했다.

이날 격려 전화가 많이 왔다. 중간지대의 보통사람들로부터였다. 그러나 항의 전화도 있었다. 요지는 “당신들은 어느 편이냐, 기회주의 아니냐”는 것이었다.

참 어려운 세상이다. 진보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보수를 질책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찌 자기 편은 잘못이 없고 다른 쪽만 과오가 있을 수 있는가. “경찰의 강경진압은 법질서 수호를 위한 책무”라는 논리와 “시위대의 폭력은 저항권”이라는 항변 사이에 평화적 집회와 대화가 공존하는 중간지대는 없는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중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지성사회의 붕괴를 의미하며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나만 옳다’는 논리로 이 사회를 뒤흔들어온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지식인들이 져야 할 것이다. 이쯤해서 정치인과 언론인, 지식인들이 지난 10여년 동안 자신이 한 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을 권해보고 싶다. 그러면 어제의 논리가 어느새 뒤바뀌어있고 오늘의 주장이 과거에는 정반대였던 경우도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요즘 국민들은 다 안다. 누가 언제 어떤 말을 했는지를.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지지 않는 지성사회의 회복 없이는 신뢰의 회복도, 권위의 회복도 어렵다. 그것은 언론이나 지식인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 더 절실한 과제다. 자 이제 지성사회의 회복을 위해 정치복원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떨지….

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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