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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영문판 'A등급 번역' 10권중 1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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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영문판 'A등급 번역' 10권중 1권뿐

입력
2008.07.02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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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번역 출판된 한국소설 중 작품 이해에 방해가 되는 오류가 쪽당 1건 이하인 우수 번역서 비중이 10%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번역 및 출판 과정에서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은 번역서 품질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오히려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윤지관) 의뢰로 1970~2006년 영역 출간된 한국소설 72종(원작 기준 41종)의 번역 수준을 검토한 평가위원단(위원장 송승철 한림대 교수)은 1일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평가위원단은 한국문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한 국내 학자 10명과 외국인 학자 4명으로 구성돼 있다.

개별 책에 대한 최종 평가는 A+, A0, B+, B0, C+, C0의 6단계로 내려졌다. 이중 A+등급을 받은 책은 없고, A0등급은 7종(10%)이었다. 쪽당 2건 가량의 오류가 발견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되는 B+등급 18종을 합해도 신뢰할 만한 수준의 번역서 비중은 36%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간 연대별로 보면 A등급 비율은 80년대 0%에서 90년대 5%, 2000년대 25%로 급증하는 추세지만, B+등급까지로 범위를 넓혀보면 80년대 14%, 90년대 48%, 2000년대 50%로 90년대 이후 번역 수준이 정체하는 양상이다. 번역자 출신별로 보면 B+등급 이상 비율이 내국인 번역자의 경우 34%, 외국인 번역자 23%, 내외국인 공역 60%로 나타났다.

2001년 출범한 한국문학번역원과 그 이전 한국문학번역금고ㆍ문화체육부ㆍ문예진흥원 등 국가기관의 번역 지원을 받은 40종 중 B+등급 이상을 받은 책은 12종(30%)으로, 그 비율이 40%인 비지원 출간서에 비해 성적이 나빴다. B+이상 등급을 받은 국가기관 지원 번역서는 80년대 0%, 90년대 37%, 2000년대 43%로 비율이 늘고 있지만, C등급 책 역시 90년대 31%에서 2000년대 57%로 대폭 증가했다. 정부기관 중 현재 번역 지원사업을 도맡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작 10종 역시 절반이 C등급에 그쳐 번역 지원 효율 제고라는 숙제를 얻었다.

송승철 위원장은 지금까지 출간된 한국 현대소설 영역본 196종 중 72종을 선별한 기준에 대해 “<날개> <메밀꽃 필 무렵> 등 번역본 종수가 많은 작품을 우선 선정했고, 여기에 원작 창작시기 분포를 고르게 하고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고른다는 원칙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평가위원 2명이 한 팀이 돼서 장편은 작품 전체의 10%, 단편은 30% 분량을 원문과 일일이 대조했고, 이렇게 나온 팀별 평가서를 위원단 차원에서 2차에 걸쳐 수정했다”고 평가 경위를 밝혔다. 평가위원들은 충실성(원문의 함축적 의미를 얼마나 잘 옮겼나), 가독성(문학작품에 걸맞은 문장을 구사했나), 원문 명기(원본 서지정보 서술 여부) 등 8개 기준을 평가 항목으로 삼았다.

한편 평가위원단은 내년 전반기 영역 시집에 대한 번역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그 내용을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 한국소설 영역본 오역 사례

송승철 평가위원장은 1일 한국소설 영역본 번역 평가 결과를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평가 과정 중 발견된 졸역ㆍ오역 사례를 여럿 소개했다. 그는 "매끄러운 번역 문장을 구사했는지를 따지는 가독성 측면에선 전반적으로 우수했지만, 원작의 문학적 의미를 제대로 살려내는 충실성 차원에선 문제 되는 번역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먼저 번역하기 까다로운 어휘나 표현을 빼놓는 '(편의적) 누락' 사례가 눈에 띈다. 1999년 출간된 이청준 중단편 선집의 수록작 '예언자'의 한 구절은 원문에 있던 '하지만 이제' '바야흐로'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하고' 등의 어구를 모두 없애버려 원작의 미묘한 심리적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임철우 중편 '아버지의 땅'을 옮긴 한 번역가는 장문의 두 단락에서 묘사 부분을 몽땅 들어내고 한 단락으로 만들기도 했다.

역사적 지식이 부족해서 초래된 오역도 있다. 전광용 단편 '꺼삐딴 리'를 옮긴 한 번역자는 '자위대가 치안대로 바뀐 다음날이다'라는 구절을 옮기면서 '패망한 일본의 자위대가 자율적 임시경찰기구 치안대로 공식적으로 조직됐다'는 잘못된 정보를 임의로 삽입했다. 한국 사정에 어두운 외국 독자를 배려하려는 의욕이 앞선 결과다.

우리말 실력이 떨어지는 오역도 보인다. 일례로 채만식 장편 <태평천하> 의 한 번역서는 '윤직원 영감은 혼자서 내리다못해 필경 인력거꾼더러 걱정을 합니다'라는 구절을, '걱정하다'가 '아랫사람을 나무라다'란 뜻이 있음을 모른 탓에 엉뚱하게 옮겼다. 집게손가락을 뜻하는 '염지'를 엄지(his thumb)로 착각한 경우도 있다. 어떤 번역자는 김유정 단편 '동백꽃'에 등장하는 동백꽃이 '아주까지 동백'이라 불리는 노란 생강나무 꽃이란 사실을 모른 채 동백나무에서 피는 붉은 꽃(camellia)을 뜻하는 'The Camellias'를 제목으로 다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 '한국문학 번역 워크숍' 해외 예비번역가-한국작가 만남

지난달 30일 서울대에선 한국문학 번역을 공부하는 해외 대학원생들과 국내 작가들의 만남이 있었다. 국제교류진흥회ㆍ서울대 국문학과 공동 주최로 지난달 25일부터 1일까지 열린 '한국문학 번역 워크숍'의 한 순서였다.

손꼽히는 한국문학 원어민 번역가인 데이비드 맥캔(미국 하버드대 교수), 브루스 풀턴(캐나다 UBC 교수), 안선재(서강대 교수)씨 등이 교육을 맡은 이 워크숍엔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온 12명의 석ㆍ박사 과정생이 참가했다.

이날 행사엔 시인 송찬경 이문재씨와 소설가 김경욱 편혜영씨가 초청됐다. 참가 학생들이 워크숍 기간 동안 번역한 작품 목록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이다.

작품을 놓고 원작자와 예비 번역가로 만난 네 작가와 학생 간 대화는 의례적 언사 없이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작가들은 번역자의 이해를 돕고자 작품 창작 배경을 상세히 설명했고, 해당 작품을 번역한 학생들은 번역 중 궁금하게 여겼던 점을 의욕적으로 질문했다. 학생들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 덕에 행사 대부분은 한국어로 진행됐다.

송찬호씨 시집 <붉은 눈, 동백> (2000)을 번역 중인 웨인 드 프리메리(하버드대)씨는 이 시집 수록작 5편에 대한 번역을 제시하며 송씨와 의견을 나눴다.

드 프리메리씨는 "송씨는 <붉은 눈, 동백> 에서 중국 최고(最古) 지리서인 <산해경> 의 생태학적 상상력을 현대 한국에 끌어들이고 있다"면서 "시인의 어조(tone)를 영어로 살리는 일이 번역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 '산경 가는 길'의 첫 연 '저 행복한 동물원 가족들/ 귀여운 토끼 귀, 쫑긋과/ 앙증맞은 여우 신발, 사뿐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동백꽃 보러 간다'에서 둘째행 마지막 음절인 '과'가 과(科ㆍfamily) 아니냐, 그렇다면 앞 행의 '가족들'(family)과 운을 맞춰 번역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송씨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단순한 도치구문이며 '과'는 'and'로 번역되는 접사일 뿐"이란 송씨의 답이 뒤따랐지만, 문구 하나에도 주의를 쏟는 번역가의 노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보험사기 수사관을 주인공으로 한 김경욱씨의 단편 '당신의 수상한 근황'을 번역한 정재원(미국 콜롬비아대)씨는 한국 작가들에게 문학작품 번역의 일반적 절차를 소개했다.

"번역 작품을 고르면 우선 평범한 독자처럼 읽으면서 문장을 일일이 직역한다. 두 번째 읽으면서부터는 단어와 문장이 작품 속에서 갖는 비중과 역할을 해석하고, 작가의 의도를 추측하면서 번역 문장을 다듬는다." 정씨는 "작가와 직접 대화할 기회를 갖는 것은 번역자에게 소중한 과정"이라면서 김씨에게 작품 전반 및 개별 구절을 오가며 여러 질문을 던졌다.

제목에서 '당신'이 어떤 이들을 지칭하는지, '근황'을 어떤 단어로 번역해야 하는지가 어려웠다는 질문에 김씨는 정씨가 제목을 'Your Suspicious State'로 번역하곤 그것을 '너의 수상한 근황'으로 재번역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영어권에선 'you'가 '당신'이란 복수보단 '너'라는 단수로 이해되는게 보통인데, 그렇게 옮길 경우 작중인물뿐 아니라 독자까지도 포괄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당신'이란 단어를 쓴 내 의도와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문재씨의 '촛불은 우는 것이다' 등 2편을 번역한 최정자(하버드대)씨는 "한국에 오기 전 시인의 어떤 시를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한국에서 촛불시위가 한창이라는 뉴스를 접했다"며 시 선정 배경을 밝혔다. 편혜영씨 단편 '첫 번째 기념일'을 번역한 신디 첸(캐나다 UBC)씨는 생화학ㆍ분자생물학 전공자이면서도 한국문학 번역에 관심을 갖고 워크숍에 참가해 이채를 띠었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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