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지표 추락보다 더 무서운 리더십 추락
#1. 1차 오일쇼크의 파장이 진정된 지 불과 3~4년. 2차 오일쇼크가 불거졌다. 내성이 생긴 선진국들의 충격은 1차 쇼크 때보다 적었지만, 한국 경제에는 엄청난 충격파를 불러왔다. 80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2.1%)였고, 물가는 살인적인 수준(28.7%)까지 치솟았다.
#2. 1997년 초. 한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보그룹의 부도(1월23일)를 시작으로 삼미, 진로, 대농, 그리고 기아그룹까지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외국 금융회사들은 국내 은행과 종금사에 대한 자금 공급을 중단했고, 외국인들은 한국기업 주식을 팔아 치웠다. 외환보유액은 금세 바닥이 났다. 그 해 12월3일 임창렬 신임 경제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했다.
두 장면엔 공통 분모가 있다. 혼란, 위기에 대한 미흡한 대응이다. 위기대응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리더십의 부재였다. 2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던 1980년 무렵은 10.26 사태, 12.12 쿠데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이어진 정치적 격변기. 오일쇼크에 대처할 리더십은 완전히 실종된 상황이었다. 환란이 발생한 97년은 YS정권 말기였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김현철)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있었고 환란이 속속 다가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당시 대통령은 전혀 힘을 못 쓰는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해 있었다.
2008년7월, 3차 오일 쇼크, 2차 외환 위기(정확히 말하면, 환란 충격과 맞먹는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만큼 안팎으로 복합적인 악재가 켜켜이 쌓여 있다. 각종 경제 지표가 보여주는 위기 징후보다 더 무서운 건 리더십의 실종이다. 대내외 경제 악재에 더해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촉발된 촛불시위, 이에 따른 정국 혼란이 앞선 두 차례의 경험에서처럼 위기를 증폭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복합적 위기에 대처할 리더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경제가 2차 오일쇼크나 환란 당시와 맞먹는 깊은 늪에서 장기간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똑 같은 경제적 어려움 아래서도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이 돼 있고 응집된 힘으로 정부와 지도층이 이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리더십의 3무(無)’를 지적한다. 첫째 현실인식.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대형 사태로 확산된 것이나 고환율 정책이 쓰라린 실패로 귀결된 것 모두 정부와 경제팀의 그릇된 현실인식에서 비롯됐다.
둘째 소통. 한ㆍ미 간 쇠고기 협상은 물론이고 대운하 정책, 공기업 개혁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국민과의 소통은 단절됐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리더십은 조직원들과의 부단한 소통에서 나온다. 일방적인 강요는 엄청난 부작용만 낳는다”고 지적한다.
셋째 신뢰. 현실인식도 잘못됐고, 국민들과의 소통도 없으니 신뢰가 쌓일 리 만무하다. 오락가락하는 환율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제 와서 “성장보다 안정”이라고 돌변한 정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국민들도 그리 많지 않다.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데, 위기 극복을 위한 동참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국민과 시장의 응집된 힘을 끌어내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외부 충격을 내부적으로 흡수해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리더십 회복이 그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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