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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15> 클리프 리차드 한국공연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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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15> 클리프 리차드 한국공연 소동

입력
2008.07.0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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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국 출신으로 세계를 풍미한 가수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와 인연이 많다. 그 인연은 아마도 그가 출연한 영화 <젊은이들(The Young Ones)>로부터 시작일 듯 하다. 이 영화는 1961년에 제작되었다. 클리프가 21살 때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 것은 64년도였다. 한 마디로 상큼한 영화라는 인상이었는데 나는 이때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막걸리에 스카치위스키를 칵테일 한 듯한 목소리와 자연스럽고 애교 있는 몸짓, 그리고 ‘더 섀도우즈’ 악단의 박력있는 반주등은 한국의 팬들을 휘몰아 갈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된다. 동과 서를 구별 없이 믹스할 수 있는 것이 그의 특기이기에 레퍼토리 여하에 따라 수명이 오래 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65년 3월14일자 <주간한국>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그는 1940년생이라서 우리식으로 하면 “용띠”다. 우리나라 연예계에 용띠가 아주 많은데, 영국에도 그런 현상이 있는지 우연인지는 몰라도 클리프와 경쟁관계라고 할 수 있는 톰 존스(Tom Jones)도 40년생 용띠이다. 뿐만 아니라 더 비틀즈의 멤버인 링고 스타(Ringo Starr)도 동갑내기 용띠.

클리프가 데뷔한 것은 17살때인 57년이지만, 59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63년에는 영국 각지의 인기투표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면서 톱스타가 된다. 한국일보는 이 가수를 초청해서 공연을 갖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스케줄 때문에 1969년에 한국 공연이 성사되었다.

팬들은 자기들의 우상이 한국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매우 흥분해 있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환영 행사를 가질 것 인가를 가지고 고심들을 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클리프 리처드 팬클럽이 두개가 있었다. 하나는 CFC, 즉 클리프 팬클럽이고, 또 하나는 CRFC, 클리프 리처드 팬클럽이다. 회원들은 대학생들과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남학생들은 몇 명 안 되고 거의가 여학생들이었다.

클리프가 한국에 도착하는 날은 69년 10월15일이었다. 공교롭게 하루 전날인 14일이 그의 생일이어서 팬들은 당연히 생일 파티를 해주기로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그가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 500명이 넘는 팬들이 모였다. “클리프 사랑해요” “생일 축하해요”등 수많은 플래카드를 들고 공항마당에 모인 팬들은 주최측(한국일보)의 걱정을 일축하듯이 아주 질서정연하게 입국 환영행사를 가졌다. 간단한 행사를 마치고 클리프와 전속 밴드인 더 섀도우즈 멤버들, 매니저와 나는 버스를 함께 타고 서울 시내를 향해 떠났다. 나는 공연 MC와 통역 그리고 행사 진행등을 맡아서 그가 움직일 때 마다 함께 다녀야했다. 그래서 팬들의 부러움을 샀다.

서울로 들어오기 전에 이기석 총무국장이 나한테 특별 주문을 했다. “숙소인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로 곧장 가지 말고 여의도를 거쳐서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 소공동을 돌아 호텔로 가세요.” 빌딩이 많은 곳을 지나면서 옆에 앉아 있는 클리프한테 “여기가 한국의 맨해튼”이라고 설명해 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빌딩이 많고 잘 사는 곳이라는 것을 과시하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나는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눈치 빠른 클리프는 “왜 이렇게 빙빙 돌아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맨해튼 이야기는 꺼내기 싫어서 공연이 시작되면 바쁠테니까 지금 시내구경을 시켜주느라고 돌아가고 있다고 둘러댔다.

첫 번째 공연은 10월16일, 서울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졌다. 메인 커튼이 내려져 있는 상태에서 MC를 맡은 내가 막 뒤에 서 있었다. 커튼이 서서히 올라가면서 내 구두가 보이자 그게 클리프의 신발인줄 알고 객석은 꺄꺄 소리를 지르며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무대 뒤로 뛰어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젊은이들(The Young Ones)’을 시작으로 그는 주옥같은 노래들을 불렀는데 너무 소란스러워서 노랫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29세의 젊은 클리프는 정말로 노래를 잘 했고 팬들이 열광할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한곡 한곡 노래할 때 마다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 가야할 일이 있다. 클리프 공연 때 여성 팬들이 무대 위로 팬티를 던졌느니 속옷을 던졌느니 하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꽃과 손수건을 던졌고, 일부 팬들은 미리 준비한 선물 보자기를 던지기도 했다. 선물과 손수건 등은 우리 주최 측 사람들이 모두 수거를 했기 때문에 팬티를 벗어 던졌다는 것은 잘못 전해진 것임을 입증 할 수 있다.

공연이 모두 끝난 날, 18일 저녁에 서울 소공동에 있는 국제호텔 ‘프린세스’에서 클리프 일행과 한국일보 관계자들이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이때 딴 테이블에 있던 손님 중에 김모씨가 나한테 와서 “클리프를 굉장히 좋아 하는데 비젼스라는 노래를 한곡만 부르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나는 “매우 실례가 되는 일”이라며 당연히 거절을 했다. 그랬더니 그 일행 중 한 사람이 나한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고 일행 여러 명이 나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가서 폭행 직전 까지 가는 등 협박을 하기도 했다. 물론 클리프 일행은 이 소동을 알지 못했다. 김모씨는 그 후로 나하고 친해져서 지금도 가까이 지내고 있다.

클리프는 나를 ‘코리안 존(John)’이라고 불렀다. 자기 전속악단인 ‘더 섀도우즈’의 멤버 중 존 러스티와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후로도 여러 번 한국 공연을 하고 싶어 했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 2003년 두 번째의 한국 공연을 했다. 그의 나이 63세지만 여전히 매력 있는 모습이었다. 참고로 클리프 리처드 한국 팬클럽은 창덕궁 돈화문 앞에 있는 건물에 사무실을 가지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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