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LG 야구단 홈페이지의 게시판인 ‘쌍둥이마당’에 한 팬이 글을 올렸다. 지난 21일 잠실 롯데전 때 회원의 날을 기념해 헤어 무스를 경품으로 받았다는 이 팬은 우연히 제조 일자를 발견했다. 96년6월4일. 정확히 12년 전에 만들어진 제품이었다.
화가 난 팬은 제조사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보통 헤어젤이나 무스의 유통기한은 최대 3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LG는 재고 처분을 위해 지금은 판매조차 하지 않는 12년이나 지난 제품을 팬들에게 경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팬의 항의 전화를 받은 LG는 군색한 변명과 사과를 늘어놓은 뒤 파장을 우려, 게시판에 올려진 글부터 황급히 삭제했다.
LG구단은 ‘다시 부는 신바람, 팬과 함께 V3’를 올시즌 캐치프레이즈로 정했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성적에도 눈물겨운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있는 팬들에게 내놓은 선물이 고작 유통기한이 지난 재고품이었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수년간 바닥을 전전하고 있음에도 팬의 힘으로 지탱해가고 있는 인기 구단이라면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없다.
LG는 올시즌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피해갈 방법이 없어 보인다. 야구 전문가들은 팀을 이끌어갈 리더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다. 리더는 야구 실력을 갖춘 고참급 선수를 의미한다. LG는 한때 그런 인재들이 넘쳐 나는 팀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LG의 황금기를 이끌던 서용빈(LG 코치 연수 중), 유지현(전 LG 코치), 김재현(SK) 등이 포장지에 표기된 ‘유통기한’에 의해 용도 폐기됐다.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헤어 무스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통 중임에도 말이다.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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