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현장 10년만에 최악… 夏鬪까지 겹치면 끝장
산업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 하루하루 버티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이대로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아예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 각종 지표는 외환위기 최악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다.
어려움의 중심에는 하루가 다르고 치솟고 있는 원자재가가 있다. 1년전보다 2배이상 오른 유가뿐 아니다. 산업의 기초 재료인 나프타, 플라스틱, 철강, 시멘트…. 어느 것 하나 급등하지 않는 게 없다. ‘매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 산업현장은 원가부담에 골병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 비명의 근원, 원가부담
힘 빠진 기업들은 정부 쪽을 바라보지만 기댈 곳이 없다. 촛불 뒤에 숨을 죽이느라 경제는 뒷전이다. “고통은 이제 시작이다. 기름값 등 원자재값 급등의 파고가 경제 전반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기대할만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산업현장의 한 목소리다.
가장 심각한 산업현장은 건설부문. 분양가는 그대로인데, 골조공사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철근값을 비롯한 원자재값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경기둔화로 미분양 가구수는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13만가구)를 넘어섰다. 자금회전이 막히면서 돈을 빌려준 금융권까지 피해가 번지고 있다.
세계 1위인 조선업계의 고민도 크다. 선박 원가의 20%에 이르는 후판(두꺼운 철판)값의 고공행진이 그 원인이다. 대형 조선업계 관계자는 “후판 원료인 슬래브값이 급등하고 있어 (후판값 급등에 대해) 어떻게 손 써볼 수도 없다”며 “현재로선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 선박을 수주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충격은 중소 조선소들에 더 심각하다. 수급도 장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원재료 급등은 곧바로 도산으로 이어진다. 부산지역 조선소 관계자는 “철판값이 더 오를 경우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파업까지 겹치면 이대로 끝
석유화학업계는 이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에 접어들었다.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나프타 가격은 톤당 1,000달러로, 2005년에 비해 2배 넘게 올랐다. 석유화학업계에는 활로로 구조조정을 택하고 있는데 최근 코오롱 유화부문 일부를 인수한 LG화학이나 사업 통폐합에 들어간 호남석유화학 등이 대표적이다.
원가부담의 짐을 진 산업계는 파업이라는 또 다른 짐을 앞에두고 전전긍긍이다. 2일 민노총을 시작으로 예고된 파업은 산업현장에는 치명타다. 변질된 촛불민의가 산업계를 온통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나라를 살리자, 경제를 살리자’는 산업계의 절박한 호소는 촛불 눈치만 보고있는 정계 학계 등 각계 지도층에 의해 완전히 차단되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산업본부장은 “호랑이에 물린 상황인데,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 없는 형국”이라며 “특히, 우리나라가 자중지란에 빠져 있는 모습이라 위기극복의 모멘텀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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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기업 "촛불집회 장기화로 죽을 맛"
“장기화하는 촛불 집회로 죽을 맛입니다.”
참다 못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나섰다. 소상공인 및 자영업 관련 14개 단체는 30일 서울 뉴국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면서 과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촛불 시위가 영세 중소업체들의 생업까지 크게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은 서민경제”라며 “서민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지갑을 열지 않아 소상공인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영세 중소업체들은 더 죽을 맛이다. 고유가를 중심으로 각종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내수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다. 누적되는 재고는 곧장 운영자금 압박으로 연결된다.
이런 상황은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경기전망 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중소기협중앙회가 1,500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7월 중소기업 업황전망건강도지수(SBHI)’는 전월에 비해 9.3%포인트 급락한 78.2%에 머물러 2005년 2월 업황전망치(74.5) 이후 4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7월 1일부터 적용되는 비정규직법 적용은 열악한 중소기업들에겐 또 다른 짐이 되고 있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서병문(64) 이사장은 “현 상황에서 당초 방침대로 비정규직법이 시행된다면 4대 보험료를 포함해 지금보다 고용 비용 부담이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며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가뜩이나 중소기업들이 다 죽어가는 마당에 이 정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정책을 시행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질타했다.
2007년 7월 처음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지난해 300인 이상 대기업에 우선 시행됐고, 올해 7월부터 100~299인 중소기업에, 2009년 7월부터는 100인 미만 사업장에 각각 확대 실시된다.
업계에선 이 같은 움직임이 자칫 노동계의 하투(夏鬪)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신상철 연구위원은 “대ㆍ내외 경제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노동계와 경영진이 극단으로 맞선다면 자칫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며 “정부 차원의 경제적인 지원 아래, 노ㆍ사가 머리를 맞대고 지금의 위기를 타개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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