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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 개인전 'Transfig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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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 개인전 'Transfiguration'

입력
2008.06.30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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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처럼 보는 이를 덮치는 이 압도적인 감정은 공포일지도, 어쩌면 고독일지도 모른다. 새까만 어둠 속에 서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다섯의 거대한 바다 이미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심해에 갇힌 듯 어지럽고 가슴이 죄어오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어 나도 몰래 팔을 휘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려한 물보라와 함께 바다를 뚫고 수직상승하는 숭엄한 육체를 보는 순간, 그것은 끝내 뭉클한 감동으로 화하고 만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57)의 신작 10여점을 선보이는 개인전 ‘Transfiguration(변형)’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27일 개막했다.

비디오 아트를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한 빌 비올라는 탄생, 삶, 죽음 등을 주제로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숭고하게 표현해내는 작가. 특히 2층 전시장에 설치된 <천년을 위한 천사> 시리즈의 다섯 작품은 회화 못잖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이름 높은 그의 명성에 절로 동감하게 만든다.

“<천년을 위한 다섯 천사> 는 롱비치의 수영장에서 빛을 막고 2주일 밤 동안 찍은 작품이에요. 어느날 스튜디오에서 예전 작업들을 정리하다가 물 속으로 뛰어드는 다이버의 모습을 모니터를 거꾸로 돌린 채 본 적이 있죠. 그건 분명히 죽음의 이미지였는데, 순식간에 생의 이미지로 전환돼 버렸어요. 물 속으로 뛰어들었던 다이버가 마치 천국을 향해 뛰어오르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는 죽음에서 생으로 뒤바뀌는 이미지들을 만들기 위해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물 속에 뛰어드는 장면을 다섯 차례 촬영한 후 모니터를 돌리거나 화면을 뒤로 감아 ‘떠나는 천사’, ‘탄생의 천사’, ‘불의 천사’, ‘상승의 천사’, ‘창조의 천사’, 이렇게 다섯 작품을 만들어냈다.

고요와 정적을 뚫고 약진하는 생의 박동이 시간의 흐름을 최대한 시각화하는 그의 슬로 모션 속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작가는 “불교의 윤회사상처럼 죽음의 이미지로부터 탄생의 이미지가 나온 이 작품을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가 특히 좋아했다”고 귀띔했다.

1층 전시장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최고 화제작이었던 ‘해변 없는 바다’(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0월 26일까지 전시)에서 파생된 작품들이 걸렸다.

흡사 우리의 토속신앙처럼 죽은 자가 저승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승을 방문하는 아주 짧은 시간을 7~8분의 화면 속에 담은 작품들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인 물의 장막을 통과한 인물들은 물범벅이 된 채 애통한 표정과 비통한 몸짓으로 보는 이의 슬픔을 자아낸다.

“1990년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잃었어요. 죽음을, 차갑게 식은 육체를 눈 앞에서 보고선 깊은 충격을 받았죠. 몸은 그대로 있는데 영혼만 사라져버린 그들을 보면서 시간에 대해 인식하게 됐습니다. 여기 머무는 시간은 너무 짧구나, 이 짧은 시간을 현명하고 소중하게 사용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요.”

그는 사람이 죽으면 별로 돌아간다는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의 믿음을 좇아 부모가 그리울 때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빌 비올라의 작품에서 죽음의 이미지는 어둠이 아니라 빛을 통해 그려진다. 자아와 육체의 용해, 소멸을 보여주는 흑백 무성 영상 ‘Bodies of Light(빛의 동체들)’이 대표적. 빛이 벗은 몸을 수직으로 내리훑으면 피부처럼 보였던 인물의 표면은 점차 근육과 혈관, 장기, 마지막엔 해골의 모습으로 변한다.

“사람은 7년마다 온 몸의 세포가 다 바뀝니다. 축어적인 의미에서 우린 7년 전의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아니죠. 늘 변모하는 존재예요.” 그래서 전시 제목이 ‘변형’이다.

빌 비올라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흑백의 영상으로 옮긴 작품 ‘Lover’s Path(연인의 길)’을 1970년대 낡은 흑백 카메라를 사용해 촬영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카메라는 성능이 나빠 쓸 수 없다고 하지만 내겐 이 낡고 흐릿한 영상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미지예요. 인간은 세포도, 생각도, 몸무게도 모든 게 늘 변하고 있는 상태죠. 인간은 그렇게 완벽하지도, 분명하지도 않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뿌연 이미지가 어떤 고화질 이미지보다 더 리얼리즘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비디오라는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펼쳐보이는 빌 비올라의 영적 사유에선 동양사상, 특히 불교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기독교인으로 자랐지만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됐다는 그는 1980년대 일본에서 2년간 살면서 일본 선종의 대가 다이엔 다나카를 만나 불교에 심취하게 됐다.

“밖에서 안을 바꾸는 기독교와 달리 불교는 안에서 밖을 바꾸죠. 이 깨달음은 아티스트로서 큰 변화를 겪게 만들었어요. 카메라가 외부의 이미지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내면의, 자아의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까요.”

전시는 7월 31일까지. 성인 5,000원, 학생ㆍ단체 3,000원. (02)733-8449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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