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140달러를 돌파, 기록적인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3차 오일쇼크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가 살아 나려면 유가 안정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당장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170달러(차킵 켈릴 석유수출국기구 의장), 200달러(골드만삭스)까지 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유가 폭등의 이유와 관련, 산유국들은 금융투기세력 때문이라고 말해왔는데 이제 이 주장이 미국에서도 공감을 얻고 있다. 원유의 수급불균형이 존재하더라도 최근의 이상 급등은 금융투기로 인한 시장 왜곡 때문이란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다. 미국 내 정유 항공 유통업계까지 나서 투기세력을 비난하고 미 의회도 원유선물시장에 대한 투자 규제를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월가 등 금융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가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어 산유국과 수입국이 벌이던 고유가 공방이 월가 대 비월가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투기세력 주범론 확산
지난 주 열린 미 의회 청문회에서 화제의 주인공은 마스터스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창립자인 마이클 마스터스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투기 세력을 규제하면 60달러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6~24개월 내에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월가의 큰 손 골드만삭스의 예측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의 발언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미 하원은 26일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과도한 투기 억제를 위한 비상조치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가결시켰다. 하원은 이밖에 금융투자자의 선물시장 투자 한도를 제한하는 등 금융투자 규제 관련 법안 9개를 제출해두고 있다. 한 의원은 연금펀드 등 기관 투자가의 상품선물시장 거래를 아예 금지하는 과격한 법안을 제출했다. 금융업계의 반발에 법안이 철회됐지만 의원들이 ‘금융 세력 때리기’에 팔을 걷었다는 얘기다.
최근 열린 주요8개국(G8) 재무장관회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재무장관회의 등 국제회의에서도 금융 투기의 제재 필요성이 논의됐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8차 ASEM 재무장관회의 뒤 “유가 급등에는 과잉 유동성에 따른 투기 세력의 영향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각국의 공동대응 방안이 회의에서 제시됐다”고 말했다. 미 의회의 규제 법안이 통과되고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하면 유가가 80~100달러 수준으로 안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 확대 고유가 원인인가 결과인가
‘투기세력 주범론’이 힘을 얻는 것은 금융자본의 투자 확대로 원유시장의 가격 상승 폭이 커졌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에 투자하는 상품지수펀드 규모가 지난 5년간 130억 달러에서 2,600억 달러로 급증했고 이 기간 상품지수를 구성하는 25개 원자재 가격은 평균 180% 뛰었다. 원유가격은 2002년 20달러 미만에서 2007년 상반기 60~70달러로 오르기까지 5년이 걸렸지만 지난 1년 동안 70달러 이상 뛰어 140달러까지 치솟았다. 전통적인 수급불균형의 시장 요인이 지속적인 가격 상승을 유도했지만 1년 만에 가격이 급등한 것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 주식시장 침체에 따라 금융자본이 원유선물시장으로 몰려 가격상승을 부추겼다는 주장이다. 에너지 관련 헤지펀드는 2004년 180개에서 최근 630여개로 늘었고 이중 원유 전문 헤지펀드만 2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 등 부시 행정부와 금융 전문가들은 투기세력 책임론은 근거가 없으며 규제를 하더라도 시장원리에 맞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인 다니엘 예르긴은 청문회에서 “유가 상승은 수요 증가, 공급 정체, 달러 약세 등 다양한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폴 크루그먼 프리스턴대 교수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현재의 유가가 투기에 따른 거품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며 “시장을 규제해도 값싼 원유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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