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마샬 지음ㆍ황용섭 옮김/궁리발행·237쪽·1만7,000원
“부르바키들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원고를 한 쪽도 빠짐없이 읽고, 각 증명을 하나씩 조사하면서 동료의 작업결과를 가차없이 비판한다. 그 비판이 얼마나 신랄한지 밖에서 부르바키를 비난할 때 쓰는 말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다시 옮길 수 없는 말로… 원고가 한 번 작은 조각으로 찢기고 그 가치를 상실하면, 두번 째 회원이 시작한다…”
1939년 첫 권이 출간된 이래 1998년까지 70여권이 출간됐던 <수학원본> 시리즈. 근대수학의 근본에 관한 표준을 남긴 시리즈로 꼽힌다. 이 기념비적인 저술을 남긴 수학자 그룹 니콜라 부르바키의 일원이었던 장 디외도네는 1968년 이 시리즈의 까다로운 저작과정을 이렇게 귀띔했다. 이 그룹의 명칭 ‘부르바키’는 보불전쟁 당시 스위스로 퇴각하다 프로이센군으로부터 무장해제의 수모를 당한 프랑스장성의 이름. 수학원본>
수학ㆍ물리학 대중화의 선구자격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새로운 수학의 건설’을 모토로 내건 이 영민하고 익살스러운 수학자 그룹이 수놓은 한 세기를 돌아본다. 부르바키가 조직된 것은 1934년 겨울. 1차 세계대전 직후 라이벌 독일에 비해 수학분야의 발전이 더디다고 느낀 프랑스 고등사범학교 출신의 젊은 수학자 다섯 명이 의기투합한 것이 결성계기다.
책은 부르바키의 수학사적 의의와 함께 수학자 개개인의 강한 개성, 학문적태도를 함께 들려준다. 수학에 관한 내용은 대학교 수학과 고학년 정도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적이지만, 이들이 남긴 뒷이야기를 들추다보면 ‘수학자들은 모두 다 뿔테안경을 쓴 모범생일 것 같다’는 선입관이 깨진다.
이들은 자신들이 즐겨 썼던 수학적개념을 이용해 청첩장을 만들거나, 엄격한 비밀주의를 고수하기 위해 신문기고와 인터뷰도 사양했다. 때로는 서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실로 서류를 발에 묶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부르바키 회의에 처음 초대된 수학자들은 ‘실험용 쥐’ 취급을 받으며 토론의 불구덩이에 던져졌고 거기서 살아 남아 ‘애벌레’ 가 됐다면 다음 회의에 초대되기도 했다.
지은이는 부르바키가 희화화돼 수학사의 짤막한 에피소드 정도로 남게 되지않은 이유는 공리 한 가지를 증명하기 위해 몇 년 동안 10차례씩 이상씩 회의를 진행하고 토론하는 등 그 어느 수학자들보다 끈기있고 학구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1950년대만 해도 독보적 위상을 차지했던 <수학원본> 과 부르바키에 대한 열광은 비슷한 스타일의 다른 책들이 출간되고 수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면서 점점 사그러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학, 그리고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산 학자들’로서 이들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책은 맺는다. 수학원본>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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