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難陀)라는 가난한 여인이 전 재산인 몇 푼의 돈으로 기름을 샀다. 작은 등불 하나를 만들어 부처님께 바치고 서원했다. “초라한 등불이지만 저에게는 큰 재산이고, 제 마음까지 모두 바치는 것입니다.
이 인연공덕으로 내생에는 지혜광명을 얻어 일체중생의 어두운 마음을 없앨 수 있길 바라옵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 다른 등불은 꺼지기 시작했지만 난타의 등불은 밝게 빛났고, 입으로 불어도 꺼지지 않았다. <현우경(賢愚經)>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 나오는 이야기로, 일체중생 구제라는 대승적 서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우경(賢愚經)>
■불교의 연등행사가 자신을 넘어 세상과 모든 생명의 평화를 기원하고 다짐하는 커다란 서원인 홍원(弘願)에서 비롯한 의례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등불과 이를 이은 촛불의 상징성은 불교만이 아니라 인류의 신앙체계에서 보편적이다. 촛불 없는 빈소나 제삿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게르만족의 동지(冬至) 축제나 로마의 농경 축제에서 모닥불과 함께 쓰인 촛불은 스스로를 태워 빛을 내는 큰 희생의 상징,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일깨우는 장치로서 초기 그리스도교에 채용됐다. 촛불행진이나 촛불미사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으로 남아있다.
■촛불의 상징성은 정화(淨化) 상징인 물과 결합하면 한결 커진다. 강물에 등롱(燈籠)이나 촛불을 띄워 보내는 세계 각지의 유등(流燈) 풍습은 죄를 씻고 영혼을 구제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7만 영령을 기리는 행사로 이어져 내려온 ‘진주 남강 유등 축제’, 인도 갠지스강에서 매일 펼쳐지는 ‘푸자(Puja)’, 태국의 음력 섣달 보름날 축제인 ‘로이 크라통’, 일본의 ‘쇼료나가시’(精靈流し) 등이 모두 그렇다. 촛불을 물에 띄우며 사랑하는 사람이 맑은 영혼으로 죽음의 저편에 이르기를 간구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처음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 축제나 제의 분위기를 느꼈다. 바람막이용 종이컵 안에서 은은히 빛나는 촛불이 제자리에서 일렁이거나 시위행렬을 따라 흐르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자신과 국민의 식품안전을 지키겠다는 다짐, ‘광우병 위험’이 제거되게 해 달라는 기원이 함께 담긴 촛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촛불은 켜지지 않는다. 사람을 모으는 신호로 잠시 켜졌다가는 꺼지고, 곧바로 싸움판이 벌어진다. 부활절 촛불은 40일 뒤인 승천 축일에 꺼져 예수가 떠났음을 알린다. ‘촛불’이 빠진 단순시위가 그저 어둠과 무질서이듯.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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