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시절부터 이래저래 접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이것이다’하고 결정한 일,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포착하면 누구보다 명확히 성취하고 그 효용성을 증가시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성공한 CEO의 특징인 그러한 사례와 경력은 지난 대선의 유권자들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닌데, 싫은데’ 하는 사안에 맞닥뜨리면 어떨까.
이 대통령이 싫어하는 직업군(群)이 공무원과 정치인, 그리고 노동자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실제가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국민들 인식엔 그렇다. 뭔가 일을 좀 하려는데 사사건건 딴지를 건다. 이 서류가 빠졌다, 저 법규에 저촉된다며 결정을 미루고, 두어 시간이면 처리될 것 같은데 내일모레 오라, 다음 주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과장이나 계장이 대기업 임원 알기를 뭐처럼 여긴다. 건설회사에 근무하면서 공무원들에게 오죽 시달렸겠는가.
배려하고 눈치 볼 사안이 뭐 그리 많은지, 일마다 여론을 들먹인다. 그러면서도 부탁과 뒷말은 하염없이 이어진다. 말은 모두 국민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숨쉬는 것조차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 서울시장을 지내면서 정치인들에게 적잖은 염증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공무원 정치인 노동자가 문제'
이 대통령이 노동자들을 싫어한다는 점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고교 시절 뻥튀기 장사를 했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엔 인간시장에 나가 하루살이 노동을 찾아 헤맸다. 아르바이트 수준이 아니라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진짜 노동이었다. 그렇게 번 돈을 쪼개 헌책방을 돌아다녔고, 그 곳에서의 인연으로 늦게나마 대학생이 됐다.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노동자상(像)은 그랬다.
힘드니 근무시간을 줄여 달라고, 임금이 적으니 돈을 더 달라고 떼쓰고 데모하는 노동자는 가짜라는 인식이다. 진짜라면 스스로 노력하고 절제하여 (자신과 같이)회사와 사회,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을 법하다.
취임 후 4개월 동안 이 대통령은 이들 세 직업군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불산단의 ‘전봇대 뽑기’로 무능과 타성을 질타하고, ‘얼리 버드’를 주창하여 게으름을 추방하려 든 것은 공무원의 숙환(宿患)에 대한 비장의 치료법이었다. 여의도 정치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면서 한나라당 내부의 역학과 알력에 애써 무관심해 한 것도 국회의원들과 덜 상종하고 싶은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떼쓰고 데모하는’ 노동자들과는 아예 얼굴도 맞대기 싫은 심정을 여러 차례 표시한 것은 이미 당선자 시절부터였다.
다 아는 얘기를 새삼 떠올리는 것은 지금의 ‘촛불집회-불법시위’ 상황에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들이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첨부한다면 ‘반정부 시위라면 나도 할 만큼 해보았지만, 이것은 아니다’라는 굳건한 인식이다.
굴욕적 한일협정 반대 데모에 나섰던 자신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이 뚜렷했는데, 최근의 시위 양상을 보면 무엇이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인지 모르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러한 촛불시위가 이 대통령이 싫어하는 군(群)에 하나 더 추가 된 셈이다.
싫다고 외면 말고 손을 잡아야
싫어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마지못해 인사하고 손잡는 것은 순간의 위기를 넘기는 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한 기업의 CEO라면 하고 싶은 사업만 추진하고, 좋아하는 고객만 상대하더라도 기업의 이윤만 극대화하면 된다. 남들이, 무관한 고객이나 경쟁 기업이 입을 모아 주장하는 말을 듣기 싫다고 외면해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럴 수 없다. 스스로 당혹스러울 만큼 최근의 상황이 꼬여가는 것은 싫어하는 대상들에 대한 외면이 길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대통령 자신이 공무원의 중요한 일원이며, 먼저 보폭을 넓혀야 할 정치인이다. 전직 노동자였으며 시위 경력자인 이 대통령이 ‘전직과 경력’에서도 많이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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