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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소설을 살다

입력
2008.06.30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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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지음/문학산책 발행ㆍ248쪽ㆍ1만1,000원

소설가 이승우(49ㆍ사진)씨의 산문집이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각종 매체에 기고했던 글 중 33편을 추렸다. 책머리에서 이씨는 수록글을 세 주제로 범주화한다. ‘내가 쓴 소설 작품에 얽힌 사연’ ‘내 시대의 문학에 대한 소회’ ‘읽어온 소설들에 대한 단편적인 감상’.

첫 범주에 포함될 글들은 이씨의 등단작 ‘에리직톤의 초상’(1981), 대표 장편 <생의 이면> (1992) <식물들의 사생활> (2000) <그곳이 어디든> (2007)과 몇몇 단편의 집필 배경을 창작 연대기 순으로 서술한다. 등단작은 이씨가 신학대 휴학생으로 결핵 요양을 하던 때 일어난 교황 저격 사건에 감흥 받아 쓴 중편이다.

“교황을 향해 총을 쏜 아그자라는 젊은이와 (신의 저주로) 자기 살을 뜯어 먹고 죽은 에리직톤이라는 신화 속의 인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동안 자기 간판이 돼준 애정 어린 작품이지만, 이씨는 데뷔작에 갇힐까 내심 초조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내 문학 이력은 어쩌면 데뷔작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몸짓이었는지 모른다.”

이씨에게 첫 문학상을 선사해준 <생의 이면> 이 그의 문학 인생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등단 10년 무렵 찾아든 슬럼프를 돌파하려 안간힘 쓰던 때 이씨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대면한다. “기억이야말로 상상력의 원천인 것….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하면, 그 기억이란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쓰지 않을 수 없는 자의 운명의 가혹함”을 느끼면서 애써 감춰둔 고향에서의 고통스러운 어린날-그 연원을 다른 수록글에서 엿볼 수 있다-을 드러낸다. 그렇게 탄생한 <생의 이면> 은 흔히 작가의 자전소설로 거론된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모든 소설은 자전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자전적인 소설들은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범주글 중엔 90년대 도래한 새로운 문학 조류 속에서 느꼈던 곤혹을 회고한 몇몇 글이 인상적이다. 감각과 욕망이 앞서고 반성과 성찰이 밀리는 문학적 지각 변동을 겪으며 작가는 “새로운 물결을 타지 못해 익사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불안과 동요를 견디게 한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나는 전부가 아니다. 나는 나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세계, 오직 나만 알고 있는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카프카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셋째 범주글까지, 이 산문집은 우리 시대 믿음직한 중견 작가의 문학적 이력과 사유, 심중에 품은 ‘소설가의 각오’를 보여준다. 도처에서 만날 수 있는 밑줄 그을 만한 구절 중 하나를 옮겨둔다. “두 번째 사랑이 첫 번째 사랑보다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랑은 언제나 어렵고 늘 불안한 것. 사랑은 여간해서는 숙달되지 않는다. …소설 역시 사랑이 그런 것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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