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시절 난해하기 짝이 없는 철학 책들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다, 콜린 윌슨의 문학 비평서 <아웃사이더> 를 접한 뒤에는 문명에 기댄 하루살이가 되지 않고자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바르뷔스의 <지옥> 을 시작으로, 사르트르, 카뮈, 헤밍웨이, 헨리 제임스, 톨스토이, 헤세 등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비교 분석한 뒤 공통점을 찾는 책이다. 지옥> 아웃사이더>
그들의 일상은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일상과는 분명 달랐다. 이 책을 읽은 후 나에게 ‘아웃사이더’란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의미에서의 ‘비주류’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20대 중반에 재즈 전문 월간지를 만들었을 때도, 보스턴에서 신문을 만들고 있는 현재에도 나는 문화적 아웃사이더로서라는 존재론적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과하고 있다.
미국 내 이민법 개혁 운동에 동참하면서,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히스패닉 등 비주류들은 그들이 자라온 독특한 배경을 바탕으로 역동적인 사상과 미학을 제시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상당수 한인들은 이러한 사회의 비합리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나서는 것에 매우 소극적이다. 시민권을 획득하고 남보다 더 부를 많이 축적했다고 해서 비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한인 2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가 소위 주류 사회에서 적절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이기도 하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한인 2세들은 취직 후, 한국과 관련된 부서로 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인들은 한인들이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이민 사회에서 주류가 되기 위한 몸부림은 한 권의 책으로 써도 모자랄 만큼 처절하고 힘겹기만 한 일이다. 어찌 보면, 미국 사회에서 영원한 아웃사이더는 우리와 같은 소수 민족일 것이라는 것을, 아웃사이더 우리 자신만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도 모른다.
인구 통계(demographics)적으로 소수라고 해서 사회적 담론을 창출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우리의 소리를 더불어 함께 내는 것이 중요해진다.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는 환상을 보는(visionary) 인간이자 창조적인 인간이다. 미래지향적이면서 동시에 비장할 수밖에 없는 미국 내 소수 민족을 가리키는 말 같기만 해, 요즘 더욱 곱씹게 되는 말이다. 아웃사이더>
양수연(보스턴 한인연합신문 www.bostonkap.com)발행ㆍ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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