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일본 '묻지마 살인범' 동생 일그러진 성장환경 고백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일본 '묻지마 살인범' 동생 일그러진 성장환경 고백

입력
2008.06.30 01:21
0 0

층을 달리해 각 방을 쓰는 아버지와 어머니, 대화가 아예 사라진 식탁, 작문에 한 자의 오자도 허락하지 않은 어머니의 완벽주의, 그리고 군대식 집단주의와 승부를 강요하는 학교. 최근 일본을 충격에 빠트린 도쿄(東京) 아키하바라(秋葉原) 전자상가 무차별 살인범의 동생이 전하는 범인의 성장 환경이다.

범인 가토 도모히로(加藤智大ㆍ25)의 무차별 살인 동기로 비정규직으로서의 직장 불안, 대화 상대가 없는 고립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지적돼 왔다. 여기에 대화가 사라진 가정과 억압적인 학교에서 성장하면서 쌓인 불행한 기억이 그를 극단적인 행동으로 몰고 가는 데 작용했으리라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가토의 3살 아래 남동생이 최근 시사주간지 ‘슈칸겐다이(週刊現代)’에 보내 2차례에 걸쳐 게재된 ‘고백문’의 내용을 소개한다.

대화와 웃음이 사라진 집안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 우리 집은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웃으면서 함께 식사하고 여름 휴가 땐 다 함께 여행도 갔다. 주말 외식을 빠트리지 않았다.

집안에 냉기가 돌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다. 어린 시절이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는 1층에서 혼자 자고 2층에서 아버지, 형, 내가 각각 따로 잤다. 가족이 얼굴을 보는 건 식사할 때뿐이었다.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모두 모여 한마디 말 없이 밥을 먹고 다시 각자 방으로 돌아간다.

비정상적인 어머니의 교육열

학교에서 내 준 작문, 그림 숙제의 테마와 문장, 구성은 어머니 지시에 따랐다. 어머니는 선생님 마음에 들 것을 염두에 두고 주문했고 우리는 거기에 따라 기계처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는 언제나 완벽을 요구했다. 작문을 하다가 글자 한 자가 틀리면 지우고 다시 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고지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쓰게 했다. 쓰다가 버리고 쓰다가 버리고 해서 작문 하나 완성하는 데 보통 1주일이 걸렸다.

작문 중에 숙어를 쓰면 왜 이 말을 썼냐고 물어본 뒤 어머니는 “10, 9, 8, 7…”로 열까지 센다. ‘10초 룰’이다. 답을 못하면 바로 따귀를 맞는다. 답 할 때까지 이런 식으로 뺨을 맞고 울면 운다고 또 뺨을 때렸다.

형이 중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그날도 다같이 모여 말 한 마디 없이 저녁 식사 중이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형에게 화를 내면서 복도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형이 먹던 밥이랑 국을 다 쏟아 부었다. “거기서 먹어.” 형이 울면서 신문지 위의 밥을 먹는 것을 곁눈질로 봤다.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집에 TV가 있었지만 ‘도라에몽’ 등 만화영화 2편말고는 시청 금지였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그랬다. 친구를 집에 데려 오는 것도 이성 교제도 금지였다. 고등학교 갈 때까지 나는 다른 집도 모두 이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집단주의, 승부 강요하는 학교

형과 내가 다닌 중학교는 마치 군대 같은 곳이었다. 형도 나도 테니스부였는데 지도교사는 학생들을 일렬 횡대로 세워 놓고 “테니스는 무얼 하기 위해 하는가”고 외친다. 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이기기 위해서 입니다”고 대답했다.

그 지도교사가 학급 담임이었다. 합창대회 같은 데서 음정이 안 맞으면 “할 마음이 없으면 그만 둬”라고 호통을 치고 학생들은 “그만 둘 수 없습니다. 하게 해 주세요” 하고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고된 반항 그리고 소외

형은 커 가면서 반항기를 맞았다. 폭발은 중 3 때였다. 1층에서 어머니와 형의 말싸움 소리가 들렸다. 잠잠해질 때쯤 내려가 보니 늘 안경을 쓰는 어머니가 맨얼굴로 울고 있었다. 피도 흘렸던 것 같다. 형이 어머니를 때렸다고 생각했다.

그런 모습을 다시 본 적은 없다. 이후로 그 폭력을 감당한 건 벽이다. 형 방의 벽은 온통 구멍투성이였다. 학교에서도 뭔가 울컥 치밀어 교실 유리창을 맨손으로 몇 장이고 깬 적이 있다. 나도 벽을 때리거나 차는 게 버릇이 됐다.

휴대폰도 없고 TV 보는 데도 익숙치 않았고 햄버거 사먹는 법도 몰랐던 나는 고교 입학 후 동급생에게 이상한 눈으로 비쳤다. 3개월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처럼 지낸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용서했다. 20세에 도쿄로 가기 위해 집을 떠날 때 어머니는 “너희들이 이렇게 된 건 내 탓이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 이후 가끔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온다. “미안하다”는 말만 거듭하면서 그냥 울기만 한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