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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계의 代母' 전성희씨 '성공하는…'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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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계의 代母' 전성희씨 '성공하는…' 펴내

입력
2008.06.2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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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한 회사에서 한 사람을 모시는 비서로 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비서를 둔 상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서계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전성희(65) 대성 수석비서와 그가 30년 ‘모신’ 김영대 대성 회장이 ‘쉽지 않은 일’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전씨가 25일 홍익출판사에서 펴낸 ‘성공하는 CEO 뒤엔 명품비서가 있다’(홍익출판사)에서다.

서울 인사동 초입 옛 민정당사에 자리한 대성 본사 7층 회장실에서 만난 전씨는 시원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전씨는 옛 것이 넘쳐 나는 인사동에 어울리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간직한 할머니 비서였다. “1년에 딱 두 번 옷을 사는데 이 옷은 15년 전 산 옷이에요.” 앞머리를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도 30년 전 그대로란다.

비서 직은 김 회장의 서울대 동기인 남편 심재룡 전 서울대 교수가 다리를 놓았다. 1979년 당시 김 상무가 편한 ‘아줌마 비서’를 찾자 자기 부인을 권한 것이다. 그때 서른 일곱의 나이였던 전씨는 며칠 도와주는 셈 치고 출근한 것이 어느덧 30년을 맞았다.

교수 부인이자 약사이던 전씨가 “스스럼없이 궂은 일, 사소한 일”에 뛰어든 것은 유학시절 경험 덕분이었다. “남편의 하와이 유학시절 보석공장에서 일하면서 오너 후손의 경영수업까지 비서가 하는 것을 보고 느낌이 컸다”고 한다.

두 사람은 30년 가까이 매일 아침 7시부터 함께 외국어 공부를 하며 실력경쟁도 벌인다. 같이 영어 일어 불어 중국어까지 마쳤다. 김 회장은 처음부터 전씨를 미국 식으로 ‘미세스 심’이라 불렀다. 인터뷰하는 전씨를 보고 슬쩍 웃으며 자리를 피해준 그는 책 추천사에서 “미세스 심은 부하 직원이라기보다는 파트너였다”고 회상했다. “차 심부름을 소중히 여기는 미세스 심은 인수ㆍ합병까지 완벽히 처리하는 전천후 인재이자 완벽한 비서였습니다.”

그는 ‘미세스 심’의 자리가 얼마나 큰 지를 그가 남편 따라 2년 동안 캐나다에 가 있는 동안 비서 셋을 들인 일화로 대신했다. 영어를 하는 비서가 한자를 몰라 한 명을 더 채용했더니 이번에는 차 심부름은 할 수 없다고 해 아르바이트 생을 더 두었다는 것이다.

전씨는 이런 김 회장과의 30년 동고동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신뢰라고 했다. 어떤 때는 김 회장에게 직언을 하는 회사 내 ‘야당’ 노릇을 한다. 회의에서 김 회장 목소리가 새나오면 일부러 차를 들고 가 ‘회장님’하고 살짝 눈짓을 하기도 한다.

전씨는 김 회장 개인에 대해 “‘2세 경영인’으로 유리한 고지에서 업무를 추진한 게 아니라 거의 맨주먹으로 고군분투했다”면서 기다릴 줄 아는 ‘인내’도 그의 덕목이라고 했다. 전경련조차 혼란스러워 하는 ‘대성그룹 회장’ 명칭을 지난 5월 포기한 것을 예로 들었다. 김 회장은 대성 회장으로, 동생 김영훈씨가 대성그룹 회장으로 통한다.

책에 대해선 “30년 비서 자리에 있으면서 수많은 상황을 접하다 보니 많은 궁리, 요령이 생기고 처세술도 생겨난다”며 자신의 경험으로 풀어낸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책 후기에서 전씨는 “내가 의사가 되었더라면 (4년 전) 남편을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 보내지 않았을 텐데 하는 회한에서 이제는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적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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