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메뉴판, 손님들이 보시는 거죠? 여기 소갈비, 갈빗살, 차돌박이는 국내산인지 호주산인지 표시해주셔야 합니다."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도림시장 내 S고깃집.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서울출장소 소속 원산지 단속반원 2명이 들이닥치자, 점원 A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도 원산지 표시를 해야 됩니까? 구청에서 아직 아무런 얘기도 못 들었는데요."
주방까지 포함한 면적이 30평(99㎡)인 이 음식점의 주 메뉴는 쇠고기와 돼지고기.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에는 원산지 표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개정된 식품위생법에 따라 22일부터 쇠고기 원산지 표시는 면적 100㎡이상 음식점까지로만 넓혀졌기 때문에, 다행히도 이 음식점은 단속 대상이 아니다. 단속반 김철희(41) 주무관은 "갈비, 갈빗살, 차돌박이는 괄호를 치고 원산지를 적고, 아니면 '우리는 호주산만을 사용합니다'라고 크게 적어도 된다"며 "여기도 내달부터는 쇠고기의 경우 반드시 원산지와 품종 표시를 한 메뉴판으로 바꿔야 한다"고 알렸다.
정부가 내달 초부터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면적에 상관없이 모든 음식점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으나 아직 일선 현장에는 어떤 메뉴에 어떤 방식으로 표시해야 하는지 구체적 지침이 없어 당분간 혼선이 불가피하다. 단속반원조차도 단속과 홍보에 애를 먹고 있을 정도다. 김 주무관은 "쇠고기 원산지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있지만 음식점 상당수는 원산지 표시제 대상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농관원 서울출장소 직원 24명이 모두 원산지 단속과 홍보에 매달려있지만, 서울 시내 12만5,000여개나 되는 음식점을 대상으로 홍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음식점에서 나와 한우를 주로 취급한다는 시장 내 H정육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형마트인 홈에버가 미국산을 호주산으로 속여 판매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앞두고 원산지 둔갑 판매에 대한 불안이 높아진 상황. 유통매장에서는 이미 쇠고기 원산지 표시가 자리잡고 있어서인지 업체도 단속에 순순히 응했다. 단속반은 진열대를 살펴본 뒤 거래명세표, 도축증명서, 수입신고필증 등의 서류를 요구하고 냉동창고로 향했다.
김 주무관은 육안으로 봐서 고기의 크기와 모양이 정형화돼있거나 뼈, 지방 등에 핏물이 배어있으면 일단 수입육으로 의심이 간다고 했다. 여기에다 서류 조작이 의심되면, 샘플을 채취 유전자 검사를 통해 한우인지 육우인지를 가려 수입산 여부를 확인하는 것. 냉동고 중 하나에 원산지 라벨이 붙어있지 않아 단속반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주인은 보관된 돼지고기를 꺼내 직접 뒤에 찍힌 도장을 확인시켜줬다.
장현희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과 4년)
문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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