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전략기획실이 30일부로 해체되고 계열사별 독립경영 체제가 출범한다.
이에 따라 삼성은 내달 1일부터 계열사별 독립경영 체제를 이끌어갈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하는 ‘브랜드관리위원회’와 ‘투자조정위원회’ 2개의 비상설 위원회를 신설한다. 또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및 등기이사 직을 사임한 이건희 회장은 일반사원 신분마저 포기하고 퇴진함으로써 전(前) 회장의 직함을 가진 대주주로 남게 된다.
삼성그룹은 25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마지막 수요 사장단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경영쇄신안 후속책을 마련하고, 전략기획실 팀장급 임원들에 대한 계열사 배치를 완료했다. 이로써 삼성그룹 경영의 핵심이던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의 삼각편대 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계열사별 독립경영이라는 초유의 경영실험에 돌입하게 됐다.
경영체제 개편과 인사
삼성은 앞으로 계열사 CEO 40명의 정기 모임인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신사업 추진 ▦유사ㆍ중복 사업 및 투자 조정 ▦삼성 브랜드 관리 등을 조정한다. 협의회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주재하되, 이 회장 부재시에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기태 기술총괄 부회장 순으로 의사봉을 잡는다.
협의회 산하에는 투자조정위원회와 브랜드관리위원회가 비상설 기구로 설치된다. 투자조정위는 삼성전자 이윤우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김순택 삼성SDI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이상대 삼성물산 사장, 임형규 삼성전자 사장,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 등 7명으로 구성된다. 브랜드관리위는 제일기획 이순동 사장을 위원장으로, 김인 삼성SDS 사장,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지성하 삼성물산 사장,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 등 6명으로 구성된다.
삼성은 또 사장단협의회의 행정업무를 지원하고 대외창구 역할을 맡을 업무지원실(실장 김종중 전무)을 두기로 했다. 지원실의 홍보업무는 김태호 전무, 사회봉사 등 대외업무는 김완표 상무가 각각 맡는다.
현업에서 물러나는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과 김인주 전략지원팀장(사장)은 사내 규정에 따라 각각 삼성전자 고문과 상담역으로 예우키로 했다. 또 전략기획실 이순동 사장은 제일기획, 장충기 부사장은 삼성물산, 최광해 부사장은 삼성전자, 최주현 부사장은 삼성코닝정밀유리, 윤순봉 부사장은 삼성물산으로 각각 배치된다.
윤순봉 부사장은 “4월 22일 발표한 10개 항의 경영쇄신안 가운데 앞으로 절차와 시일이 필요한 지배구조 개선과 사외이사 문제, 차명재산 처리 등 3개항을 제외한 핵심 조치들을 모두 실행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방향과 남은 과제
삼성의 새 경영 실험은 독립경영 체제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리더십 부재’에 따른 우려감도 낳고 있다.
삼성은 전략기획실 해체에 따라 업종별로 공동 의사결정이 필요하고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업무는 해당 업종의 주력 회사에서 맡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전자 및 금융사업에서 유사ㆍ중복 투자를 조율하고 시너지 창출을 도모하는 역할은 각각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담당한다. 계열사별 독립경영 체제라 해도 사업부문별 맏형이 형제들을 아우르며 조화로운 협력체제를 꾸려간다는 게 삼성 측의 구상이다.
하지만 재계에선 후계구도에 대한 청사진이 부재하고 컨트롤타워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주요 계열사들이 적대적 인수ㆍ합병(M&A)에 노출될 경우 계열사간 협력을 통한 효과적인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계열사별 독립경영은 실적 위주의 경쟁을 가속화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근시안적 경영에 빠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또 주요 현안마다 주총과 이사회 등을 거쳐 이뤄지는 의사결정이 자칫 삼성 특유의‘스피드 경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윤순봉 부사장은 “어떤 경영시스템도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다”며 “앞으로 사장단협의회가 열리면 계열사별 독립경영 체제 운영의 문제점이 지적될 것이고, 계열사별 시너지 효과를 낼 통합기능의 보완 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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