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6월 3일 로마의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본부에서 43개국 정상을 포함하여 180 개국이 참여하는 식량안보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식량의 수출규제’ 및 ‘식량의 바이오 연료로의 사용’에 대해 뚜렷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새 정부 규제완화는 시대 역행
일본은 5월 초 ‘신농정 2008’을 통해 식량안보 및 공급력 확보를 포함한 새로운 농정방향을 확정하였다. 여당인 자민당은 식량의 안정공급에 필요한 농지를 국가가 책임지고 확보하며, 일반기업의 농지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농지정책안을 준비 중이다. 유럽연합(EU) 또한 식량 증산을 위해 공통농업정책(CAP)의 개혁안에서 휴경보조금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세계 주요 수입국은 국제시장의 식량수급 악화에 따라 식량안보와 농지 보전을 위해 필사적이다.
반면 한국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기업환경 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한계농지와 농업보호구역 등에 대한 토지이용 규제완화를 천명하였다. 농식품부는 농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할 때 대체농지를 지정하던 제도를 폐지하였다. 또 농지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근본 취지는 “우량농지를 적극 보존하되, 영농여건이 불리한 한계농지를 중심으로 규제를 완화해 농촌경제 활성화와 농지 보전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2005년의 소유규제 완화에 이은 대규모 완화가 예상된다.
농지에 대한 규제 완화는 흔히 정책의도와 달리 한계농지에 대한 투기심리를 자극하고 무분별한 농지 전용을 유발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새 정부의 농지정책에 대해 농업계를 포함한 국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다. 쌀의 자급률만은 100%에 가깝다는 이른바 ‘통계의 마술’에 걸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쌀을 포함해 국민이 소비하는 곡물의 7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쌀만으로 필요한 식량을 충당해야 한다면 현재의 농지로는 부족하다. 또 한국은 세계 최대 농업국인 미국과의 FTA를 타결한 데 이어 연말까지 EU와의 FTA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 경우 곡물 자급도는 더 하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나라고 비농업부문의 토지수요를 충족하려면 농지 전용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식량문제가 심각해지는데 농지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으며, 식량안보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 국가에 따라 유사시를 대비한 식량안보의 개념은 다를 수 있다. 곡물 자급이 어려울 경우 수입과 비축을 통해 식량안보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 중국, 인도, 베트남 등이 다양한 수출규제를 하고 있으며, 식량수급이 악화될수록 그 같은 경향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달러 많아도 곡물 수입 어려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WTO체제 하에서는 일방적 수출 규제에 대해 수입국이 대항할 방법이 없다. 금번 정상회의 선언문에서는 “국제가격의 불안정성의 증대로 이어지는 제한적 조치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식량이 정치적, 경제적 압력의 수단으로 사용되면 안 된다”고 한 1996년 식량안보 정상회의의 ‘로마선언’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달러가 있어도 필요한 곡물을 수입할 수 없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해외 식량기지를 찾아 떠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식량안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지 보전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규제 완화로 무분별한 전용이 우려되는 한계농지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조석진 영남대 식품산업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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