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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푸시맨(Push-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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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푸시맨(Push-man)

입력
2008.06.2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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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맨의 역사는 깊고 하는 일도 다양하다. 영어가 없던 시절엔 미는 일꾼, 즉 밀꾼이라 했고, 한자를 섞어 압(壓)꾼이라고도 했다.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밀어주는 보조사공, 죄인 호송에 뒤따르는 나졸, 과부를 보쌈할 때 업고 튀는 장정이 그들이었다. 공양미 300석에 팔린 심청을 데려갈 때나, 가난한 집안의 딸을 홀애비에 시집 보낼 때도 푸시맨이 동원됐다.

팔아야 할 물건을 억지로 밀어넣는 영업사원, 인터넷으로 상대방 모니터에 정보를 구겨넣는 네티즌도 그렇다. 가장 잘 알려진 개념은 ‘지하철에 승객을 밀어넣는 인부’일 것이다.

■1974년 8월 15일 서울지하철 운행이 시작된 이후 승객이 급증하면서 출퇴근 러시아워에는 ‘지옥철’로 통했다. 1997년부터는 수송분담률에서 지하철이 버스를 앞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아르바이트 형태로 생겨난 푸시맨은 IMF 한파로 실업자가 폭증하면서 그마저 귀한 일터가 됐다. 1999년까지 통계청이 발표하는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끼지 못했으나, 이듬해부터 교통지도원, 주차장 질서계도원, 재활용품 분류원, 치어걸, 응원단장 등과 함께 정식 직업으로 분류됐다. 1970, 80년대 ‘콩나물 버스’ 안내양(Push-girl?)의 후신이었다.

■너 푸시업 잘 하냐, 팔굽혀펴기 말이다. 시간당 3,000원인데, 대신 몸이 좀 힘들어. 귀가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고부가가치 사업이 있다니. 처음 열차가 들어오던 순간, 공포스러울 정도의 거대한 동물이 파아, 하아, 플랫폼에 기어와 구토물을 쏟아내듯 옆구리를 찢고 사람들을 토해냈다. 놈의 옆구리가 흥건히 고여 있던 구토물을 다시 빨아들이고 있었다. 밀지 마, 그만 밀라니까.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왜 세상엔 푸시맨만 있고, 풀맨이 없는 것인가. 푸시맨이 소재인 박민규의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의 몇 토막이다.

■그 풀맨(Pull-man) 격인 커트맨(Cut-man)이 등장했다. 서울메트로는 이용객이 가장 많은 신도림역-강남역 구간(2호선)에서 무리한 탑승을 말리는 승하차질서 도우미(일명 커트맨)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푸시맨은 김밥의 옆구리가 터지도록(실제로 객차의 유리창이 터져나간 적도 있다), 앞쪽으로 앞쪽으로 승객을 밀어넣기만 하면 됐었다. 하지만 커트맨은 옆과 뒤를 두루 살펴야 한다. 많이 태우는 것만 선(善)이 아니라, 안전한 승차가 중요한 시절이 된 것이다. ‘성장보다 안정’이라는 정부의 변화가 땅 속에서 시작됐다고 보아도 될까?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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