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버러 헤이든 / 길산
1909년 6월 26일 독일의 세균학자 파울 에를리히가 최초의 효과적인 매독 치료제인 살바르산을 개발했다. 606번의 실험 끝에 만들어냈다 해서 ‘606호’라는 별칭이 붙은, 매독균 스피로헤타를 죽이는 비소화합물인 살바르산은 인체의 다른 세포에는 손상을 주지 않고 특정 세균만 죽이는 이른바 ‘마법의 탄환’이었다. 한 해 전인 1908년 에를리히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던 메치니코프처럼, 성병인 매독이 인류의 부도덕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며 치료제 개발 자체를 반대한 이들도 있었지만, 살바르산은 나중에 페니실린으로 매독을 완치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
1493년 콜럼버스의 귀환과 함께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옮아온 뒤 전 세계로 퍼진 매독. 현대의 에이즈다. 400여년 동안 유럽에서만 1,000만명이 매독으로 죽었다. 19세기말 파리 인구의 15%가 매독 환자였다. 그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매독은 결핵, 기생충과 함께 우리 민족의 3대 질병으로 꼽힐 정도였다.
이 어두운 질병을 제목으로 한 <매독> 은 4년 전 번역됐었다. 매독으로 본 위인전 혹은 서구의 사회문화사라 할까.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보들레르, 링컨, 플로베르, 모파상, 반 고흐, 니체, 오스카 와일드, 조이스,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들이 등장한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 에서 “매독과의 투쟁은 민족의 과업”이라고 썼다. 보들레르는 “우리의 뼈 속에 매독이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혈관 속에는 공화주의 정신이 숨쉬고 있다”고 했다. “행복이란 마치 매독과 같다. 순식간에 감염되어 온몸을 부숴버린다”고 한 건 플로베르다. 저자는 그들의 작품과 삶에서 매독으로 인한 고통과 절망을 찾아내는 한편, 그 ‘밤의 신사들’이 매독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정열의 폭발과 광기어린 영감으로 ‘파우스트의 거래’를 하는 모습에 주목한다. 숨겨야만 했던 천형의 질병으로 인한 극단과의 대면, 자신과의 대결이 그들의 창조성의 원천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거꾸로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매독>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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