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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6> 적수를 네 번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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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6> 적수를 네 번 건너다

입력
2008.06.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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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遵義)를 떠나 츠수이(赤水ㆍ적수)의 현장인 투청(土城)으로 가기 위해 시수이(習水)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뜩이나 험한 길을 공사를 하느라고 완전히 파헤쳐 다닐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비까지 왔다.

홍군의 야간행군을 생각하며 어두워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질퍽이는 길을 비를 맞으며 걸고 또 걸었다. 결국 30km를 6시간 반 만에야 주파할 수 있었다.

장정 내내 성한 국도와 지방도로를 본 적이 거의 없다. 낡은 기간시설을 보수하고 건설경기로 경제를 부양시키는 한편 마을 사람들을 건설공사에 동원해 어려운 농촌에 소득을 올려주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올림픽을 겨냥한 측면도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호텔에 도착해 여권을 내밀자 생전 처음 받아보는 외국인 거주등록절차를 몰라 공안을 부른다고 했다. 밤늦게 불려 나온 공안은 장정 70주년 때 장정을 재현한 중국 젊은이들을 취재하러 외국인이 한번 왔을 뿐이며, 한국인은 처음이라고 했다.

■ 6시간 반의 강행군, 최초의 한국인

츠수이. 강바닥이 붉은 돌로 되어 있어 마치 붉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구이조우(貴州) 북서부의 강이다. 1935년 1월28일, 홍군은 츠수이가 흐르는 투청 동쪽에 진을 쳤다.

군지휘권을 장악한 만큼 마오(毛)는 첫 전투를 큰 승리로 장식하고 싶었다. 그는 홍군이 자주 사용해온 작전대로 매복해 있다가 추적군을 역으로 공격해 섬멸하기로 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로 오히려 대패를 했다. 비상지도부 회의를 통해 북진계획이 취소되고 대신 츠수이를 건너 안전한 곳으로 후퇴하기로 했다. 공병대에게 하루 밤사이에 부교를 만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들은 불가능할 것 같은 임무를 완수했고 전멸을 면한 홍군은 츠수이를 건너 도피했다. 숨을 돌린 마오는 홍군에게 다시 츠수이를 건너 준이를 재탈환하라고 지시했다. 적의 의표를 찌른 이 작전은 적중했고 마오는 첫 승리를 거뒀다. 마오는 다시 서쪽으로 진군해 마오타이(茅台)를 통해 츠수이를 건넜다.

마오타이를 건넌 뒤 선발대로 하여금 적의 눈에 잘 띄게 큰 길로 서북쪽으로 진군하도록 한 뒤 주력군은 여러 군데로 나누어 다시 츠수이를 건너 구이양(貴陽) 쪽으로 남하하도록 지시했다. 이로서 두 달 이상을 소모했던 츠수이 4도하가 끝났다.

■ 마오의 딸과 깨어진 독

투청은 마오에게 양면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큰 패배를 안겨준 곳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멸을 피하고 후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투청의 츠수이 도하가 없었다면, 현재의 중국은 없었을 것이다. 시수이에서 투청으로 가면서 문득 마오의 세 번째 부인 허쯔전(賀子珍)이 떠올랐다.

장정 출발 시 이미 임신 중이었던 그녀는 이 곳 투청에서 애를 낳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하루 뒤 한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라는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육감대로 아이는 얼마 뒤 죽었다.

설상가상으로 두 달 뒤 허쯔전은 국민당군 비행기의 폭격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이후 그녀는 마오가 장칭(江靑)과 결혼을 하면서 이혼과 함께 소련으로 보내졌지만 우울증 등으로 불운한 삶을 살아야 했다.

투청에 들어가자 거대한 기념관이 나타났다. 츠수이 도하를 3차원 입체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 등 장정 중 본 것 중 가장 뛰어난 첨단시설이었다. 그러나 가끔 연휴 때나 단체관광이 올 뿐 관람객이 거의 없다고 한다.

물론 츠수이의 의미가 크지만 도로사정 때문에 아무도 올 수 없는 이 오지에 이 같은 첨단 기념관을 만든 것은 낭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첨단시설보다 오히려 더 인상적인 것은 한 깨어진 물독을 끈으로 묶어 놓은 것과 두 푼의 동전이었다. 한 노인이 기증을 한 것인데, 장정 시 홍군이 자기 집에 와 머물다가 실수로 독을 깬 뒤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독 값으로 주고간 돈이라는 것이다.

노인으로서는 그 동안 보아온 국민당군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태도라 감격스러워 버리지 않고 있다가 기념관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기증을 해왔다고 한다. 중국내전에서 홍군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증언하는 역사적 증거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그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 마오타이는 어떻게 국주가 됐나

마오타이는 투청과 준이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츠수이가 흐르는 인구 3,000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이 도시는 예부터 '맛있는 술의 강'이라는 이름의 좋은 강물로 독한 백주를 만들어 츠수이를 통해 쓰촨(四川)에서 들어오는 나룻배에 실어 보내던 곳이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홍군이 마오타이에 들어와 행군할 때 아직 술을 모르는 10대의 어린 홍군이 가게의 큰 항아리에서 마오타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마침 오랫동안 걸은 발이 피곤하고 열이 나 이 항아리 속의 액체를 발에 부어 씻었다고 한다. 그러자 독주의 알코올이 날아가며 시원해지고 소독효과까지 있어 여러 병사들이 다리 등의 소독에 사용했다고 한다.

뒤늦게 현장에 온 나이가 든 홍군들이 술 임을 알고 마셨더니 엄청나게 독한 데다 맛도 기가 막혔다. 다들 마신 뒤 남은 것은 모두 싸 갖고 떠나 동네의 술독을 텅 비고 말았다.

물론 마오도 마셨다. 마을 사람들은 어차피 양조장 주인들은 다 도망간 뒤인데다 술도 자신들의 것이 아니어서 홍군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이후 혁명에서 성공한 뒤 베이징에 돌아온 마오는 그 때 마셨던 마오타이의 백주를 그리워했다.

또 그때 마오타이의 주민들이 보여준 따뜻한 대접에 감사하는 뜻에서 외국 정상과의 만찬 등 국가적인 행사에 마오타이를 쓰도록 했다. 이에 따라 중국을 대표하는 나라술 '국주(國酒) 마오타이'가 탄생한 것이다. 현재 마오타이는 거대한 국영기업이다.

마을 입구에도 '중국 최고의 술 빚는 마을'이라는 운치 있는 아치형 문이 나타났다. 마을로 들어서자 냄새 때문에 코를 막지 않을 수가 없었다. 된장 비슷한 냄새였는데 술 빚는 마을답게 전체가 누룩 냄새였다. 그 향기로운 마오타이를 만드는 냄새가 이처럼 고약하다니 아이러니컬 했다. 이미 해가 졌기 때문에 숙소를 잡기로 했다.

중국최고의 술을 만드는 술도시답게 아주 고급 호텔이 있었지만 방이 없었다. 마오타이 술 회사에서 운영하는 호텔인데 마오타이 대리점 등 관련 고객들로 일 년 내내 만원이라고 한다.

마오타이가 운영하는 또 다른 호텔을 소개 받았지만 다시 퇴짜를 맞았다. 마을에는 잘만한 숙소가 없었다. 결국 위성도시로 가서 잠을 자고 다음 날 다시 오기로 했다.

■ 마오타이에는 마오타이가 없다

저녁 겸 술을 한잔하기로 했다. 마오타이까지 와서 마오타이 맛을 보지 않고 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마오타이를 파는 곳이 없었다. 즉 마오타이에는 마오타이가 없었다. 대신 마을 곳곳에는 크고 작은 독을 진열해 놓은 술집들이 즐비했다. 잔술을 파는 곳들이다.

마오타이는 이름에 따라다니는 명성에 비해 너무도 가난한 도시였다. 사방에 보이는 것이 가난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마오타이회사와 마오타이 시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다.

마오타이는 돈도 많이 벌고 직원들 대접도 잘 해주면서도 일반주민과 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오타이가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것이 없다는 불만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 중에 <두 도시 이야기> 라는 소설이 있다. 마오타이야 말로 그 이야기의 전형이다. 흥정거리는 '마오타이 왕국'과 그 밖의 가난하기 짝이 없는 '비(非)마오타이의 마오타이'라는 두 도시이다.

정작 홍군에게 따뜻하게 대해 준 것은 마오타이 회사가 아니라 마오타이시의 민초들이지 않았던가? 앞으로는 마오타이를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곳을 떠났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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