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영유아 건강 지원과 출산률 제고를 위해 지난해 11월 도입한 ‘영유아 건강검진’ 제도가 시행 7개월이 지나도록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건강검진 내용과 시기를 알려주는 우편물을 받지 못해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고, 그나마 검진도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5일 영유아 건강검진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에 따르면 5월 서울지역본부의 수검률(검사를 받은 건수/5월 검진대상자 수)은 18%에 그쳤다. 건보공단 측이 추정하는 사업시행 이후 전국 수검률도 30%대 초반에 불과하다.
경기 용인시에서 10개월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 손모(29)씨는 “주변 엄마들 중에서 영유아 건강검진 통보를 받았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보험료 고지서는 꼬박꼬박 보내면서, 건강검진 사실은 왜 한 번도 알려주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주부 이모(30)씨도 “영유아 건강검진 제도는 금시초문”이라며 “제대로 알려 주지도 않는 사업 때문에 올해 보험료가 오른 것 아니냐”고 말했다.
통보를 받고 병원을 다녀 온 부모들 사이에서는 “검진이 형식적이고 불친절하다”는 불만이 높다. 11개월 아이와 함께 두 차례 검진을 다녀왔다는 이모(28ㆍ여)씨는 “문진표의 설문조사를 작성하는 과정이 수박 겉핥기식”이라며 “엄마가 먼저 이것저것 묻지 않으면 제대로 말해 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임신ㆍ육아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도 엄마들의 불만이 넘쳐나고 있다. 네이버 ‘지후맘’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엄마들이 고심해서 작성한 설문지를 의사가 읽는 둥 마는 둥 하더라”는 글을 올렸다. 맞벌이 부모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 엄마는 “회사 일과시간에 눈치보면서 짬을 내 일부러 큰 병원을 찾아갔는데, 소아과 예방접종 때 하는 진찰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었다”며 “역시 돈 안들이고 하는 게 다 이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푸념했다.
영유아 건강검진을 대상자에게 알리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건보공단 측은 “사업시행 초기라서 발생하는 문제”라며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건보공단 측은 또 검진이 부실하다는 불만에 대해서는 “채혈을 하는 성인의 검진과 발달 상황 체크가 중심인 영유아 검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며 “현재 방식은 대규모 검진체계에서는 최적화한 방식”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선자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아이들의 건강 이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제도인데도 시행 과정의 홍보ㆍ운영 미숙 탓에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집을 자주 비우는 맞벌이 부부 등에 대한 좀 더 세심한 홍보전략이 아쉽다”며 “검진 및 결과 분석에서도 부모들의 눈높이와 기대 수준에 맞춘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영유아 건강검진은
만 6세 미만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부모의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5차례에 걸쳐 비용 부담이 전혀 없는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검진 시기는 생후 4개월, 9개월, 18개월, 30개월, 만 5세 총 5차례이며, 18개월과 5세에는 치과를 방문해 구강검진도 받을 수 있다. 검진 대상자 및 검진 의료기관 조회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http://www.nhic.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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