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 의료의 핵심 인력인 간호사의 수급 문제가 의료 현장에서 심각하고 그 대책이 시급하다. 경인지역 중소병원과 지방 대학병원까지도 간호사 수급이 여의치 않다. 간호 업무는 이미 힘들고 어려운 일로 인식되고 있다. 숭고한 나이팅게일 정신으로 평생 직업으로 삼고 헌신하는 사람이 차츰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결혼하고 육아를 책임지면서 동시에 전문 직업을 유지하기에 우리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이런 이유로 여성이 절대 다수인 간호사가 직업을 포기하고 면허증을 장롱에 간직한 채 가사에 전념하는 경우가 7만5,000명이나 된다.
병원은 3교대의 순환 근무를 해야 한다. 업무 시간이 계속 바뀌고 야간 당직을 서야 하는 간호사의 일상 업무는 젊은 사람도 견디기 벅차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서 간호사의 역할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주 업무인 기본간호에 그치지 않고 건강증진사업, 지역사회 보건사업이나 특정 전공의 전문 분야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즉 간호사가 병원에만 취업하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서울의 대형 병원들이 블랙홀처럼 간호 인력을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들 병원들은 과다한 시설 경쟁이나 대형화 경쟁으로 병상 수를 늘이고 간호사를 대거 채용한다. 간호사를 대거 확보한 병원은 환자 수 대비 간호사 수를 높은 비율로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바로 간호등급제라는 제도를 이용해 병원 수입을 올리는 간호관리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호인력 확보가 오히려 병원 수입을 창출해 주는 셈이 된다.
이런 현상은 바로 간호사 급여와 연계돼 서울과 비서울 간에 심각한 임금 불균형을 초래하게 된다.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몇년 경력을 쌓은 간호사들에게 이런 대형 병원들에서 좋은 보수와 근무 조건을 제시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향후 수도권 대형 병원들의 병상 확충안이 줄줄이 계획돼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의료시설의 대형화 경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이야기다. 의료의 질과 서비스, 효율적인 운영으로 승부를 건다. 외국에 나가 “귀하의 병원이 몇 병상인가”를 묻는 것만큼 한국적인 실수는 없다. 앞으로 대형 병원의 지방 분원화 내지 병실 증가에 따른 부담이 부메랑이 돼 의료계의 짐이 될 것은 뻔하다.
간호사 수급의 어려움에는 정부도 한몫을 했다. 하필이면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노인요양보험에 관여할 인력과 학교의 건강문제를 책임질 보건교사를 간호사로 채용한 것이다. 일선 의료 현장의 인력수급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시기 선택이 결국 간호사 인력난을 부추긴 꼴이 됐다.
지방의 병원들로서는 수도권의 대학병원이나 대기업 병원들처럼 간호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임금을 제시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 사회보장에 기본을 둔 의료보험의 계속적인 확충과 낮은 수가정책, 급여 확대 등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경영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장롱에 면허를 넣어둔 채 높은 지식과 기술을 사장하고 있는 간호사들을 불러내려면 수도권 병원들이 제시하는 것 이상의 고임금과 좋은 근무조건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인데 지방 병원들로서는 도저히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정부와 병원, 의료계, 간호 관련단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간호사 인력수급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를 촉구한다. 적어도 우리보다 수준이 낮은 외국에서 간호사를 수입하는 불행한 사태는 막아야 한다.
하영일 건양대병원 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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