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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공중그네'까지 탈 수 있다면

입력
2008.06.2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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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서울대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 봤다는, 그래서 “요즘 대학생들은 심각하고 진지한 독서 싫어해”라는 말까지 나오게 한 일본 코믹소설 <공중그네> . 어디 서울대생들만 그런가. 2005년 1월에 국내 출간돼 60만부가 팔렸고, 심지어 고1짜리 아들놈까지 낄낄거리며 읽었을 정도니, 그 인기 짐작하고 남을 터.

매력있는 뚱보 정신과의사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미있길래, 기껏해야 일본 싸구려 대중소설이겠지. 아니면 평생 책이라고는 잡아보지 않으면서 고전소설이나 들먹이는 사람들은 재미 삼아, 자녀들과 대화를 위해서라도 한번 읽어 보시라. 웃는 것이 죽기보다 싫지 않다면 다 읽을 때까지 아마 손에서 놓지 못할 테니. 딴에는 ‘지식인입네’ 하는 주변 인간들도 다 그랬으니까. 그것으로 모자라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소설까지 읽어댔으니까.

거창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름이 이라부인 한 괴짜 뚱보 정신과의사의 환자치료기이다. 줄거리를 나열하면 읽을 사람 김빠질 테고, 읽은 사람 지루할 테니 생략하고,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왜 재미있는가만 간단히 말해보자. 우선 캐릭터들이 별나다. 정신과의사라는 게 지적 분위기와는 담을 쌓았으며, 의학용어는 쓸 줄 모른다.

환자 앞에서 꼭 저능아처럼 행동한다. 환자 역시 뾰족한 물건에 공포를 느끼는 야쿠자, 공중그네를 자꾸 놓쳐 떨어지는 서커스 단원, 공을 못 잡는 신인왕 후보 야구선수 등 어느날 갑자기 자기 직업에서 치명적 결함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상식과 고정관념을 뒤집는 것은 등장인물만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과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환자인지, 누가 의사인지, 병을 고치겠다는 건지, 더 악화시키겠다는 도무지 헷갈린다. 이상한 것은 환자들의 변화다. 처음 ‘웃기는 놈’ ‘미친 놈’이라고 생각했던 이라부에 점점 끌린다. 그를 만나다 보면 신기하게 병이 낫는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의사 이라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단지 소설이니까. 그랬다면 <공중그네> 는 억지 코미디로 낙인 찍혀 결코 ‘서울대생들까지 좋아하는’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까지 권장도서로 뽑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웃음과 재미 속에 소중한 메시지와 감동을 숨겨 놓았다. 현대인의 불안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연민,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무엇으로 열어야 하는가에 대한 열쇠를. 그것도 잘난 체 하거나, 잔뜩 점잔을 빼지 않고 아주 장난스럽게. 그래야 거부감이 없으니까.

이라부는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지 않는다. 편견 없이 어린애같은 순수한, 그래서 때론 막무가내로 상대의 세계로 들어가려 한다. 야쿠자인 척하며 환자의 라이벌을 만나고, 그 뚱뚱한 몸으로 공중그네를 타려 한다. 야구도 직접 배우며 좋아라 한다. 그 과정에서 환자들은 진심으로 자기를 이해하는, 자신과 친근하고 정직하게 소통하려는 한 인간을 발견한다. 그것이야말로 이라부가 가진 최고의 약이다.

정직한 소통 시도 본받아야

오쿠다 히데오는 광고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그만큼 ‘소통’과 ‘설득’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을 것이다. 다분히 장난기가 발동했지만 <공중그네> 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인지도 모른다. 홍보라는 것도 비슷하다. 이런 영화 홍보맨이 있다.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내가 봐도 그렇다. 그러나 고생하면서 열심히 했다. 이번에 용기를 주면 더 좋은 작품 만들겠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저절로 도와주고 싶어진다.

새로 청와대에서 홍보 일을 맡은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라부처럼 기꺼이 ‘공중그네’까지도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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