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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인격이 사교술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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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인격이 사교술이 아니라면

입력
2008.06.2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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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에 관한 한, 나는 늘 내 발밑이 불안하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인격’을 입에 담는 것을 삼가왔다. 그러나 강준만 교수의 6월 18일자 칼럼 <인격은 사교술이 아니다> 가 내 6월 12일자 칼럼 <손호철과 강준만에 잇대어> 에 대한 비판적 논평의 성격을 띠었으므로, 내 인격에 대해서 잠시 눈을 꼭 감고, 용기를 내서, 인격 얘기를 이어가 본다.

사실 마음 한 구석엔 비생산적 대화라는 거리낌이 있다. 내 판단에 강 교수의 글과 내 글은, 서로 맞버티는 듯 보이지만, 엇비슷한 세계관이 서로 다른 각도로 한국사회에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서로 겉도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강 교수는 특정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공감을 표하긴 했으나, 그 공감이 흔쾌한 공감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 ‘인격’의 판단을 그가 그리 어려운 일로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의심한다.

왜냐하면 그가, 비록 ‘극단적인 사례’라고 방어벽을 치긴 했으나, 5년 전 어느 ‘개혁’ 정당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 은폐와 그 즈음 문단에서 일어난 ‘범죄행위(에 가까운 인격적 일탈행위)’를 예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극단적’ 사례를 두고 당사자의 인격을 판단하긴 쉽다. 그러나 이념과 인격의 괴리 문제가 인격의 그런 극단적 타락에서 말미암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인격의 공정 영역과 사적 영역

강 교수는 주변사람들에게서 험담을 안 듣는 사람의 인격이 평균인의 인격보다 뛰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며, 인격은 사교술이 아니라고 일갈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좀 멍해졌다. 그의 말이 지당해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그를 잘못 읽었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강 교수가 인격의 중요성을 힘줘 말했을 때, 나는 그가 인격은 (사적 영역만이 아니라!) 공적 영역을 아우르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인격’의 사적 영역을 인정하는 데 인색한 것이다.

물론 인격은 사교술이 아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사교술이기도 하다. 만약에 인격이 순전히 공적 영역이라면, 그것을 이념과 구별해내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복거일씨나 이문열씨에게 화가 난 것은, 내 판단과 달리, 그들의 ‘이념’ 때문이 아니라 ‘인격’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경우에 이념과 인격을 구분하려는 노력의 실익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어느 이념이건 그 실천이 그 신봉자의 나쁜 인격에 의해 왜곡되고 타락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강 교수의 제안도 뜻을 거의 잃을 것이다. 인격을 공적 영역에 가둘 때, 예컨대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던 스탈린은 자신의 (공적인) ‘너저분한 인격’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거나 타락시킨 게 아니다. 그는, 인격에서든 이념에서든, 거짓 마르크스주의자였을 뿐이다.

명분의 홀대와 이념의 결핍

소위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 포럼이 대안교과서라며 지난봄 내놓은 <한국 근현대사> 의 책임편집자 이영훈 교수는, 그즈음 <시사in> 과의 인터뷰에서, 유신체제의 해악은 (고작) 수백 명의 시민들에게 국회의원, 대통령이 될 권리를 한동안 제한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소문난 ‘실증주의자’의 반(反)실증주의적 언동도 어처구니없지만, 인격의 사적 영역을 경시할 때, 그의 (공적으로 ‘추레한’) 인격은 그의 (역시 공적으로 ‘추레한’) 이념의 속살일 뿐이다. 인격의 사적 영역을 몰수해버리면, 강 교수의 소망과 달리, 이념은 곧 인격이 되고 만다.

그건 그렇고 한국은, 강 교수의 생각처럼, 정말 ‘명분 중독증’에 걸린 ‘이념과잉’ 사회일까? 오히려, 그가 얼마 전 낸 책의 제목대로, (명분이나 이념이라는 공적 가치를 소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사적 이해관계로 대치하는) ‘각개약진 공화국’이 아닐까?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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