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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결혼문화/ <下> 빈익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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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결혼문화/ <下> 빈익빈

입력
2008.06.2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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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이 4,000만원을 넘고 서울에 소형 아파트를 소유한 고모(34)씨. 대학은 나오지 않았지만 중견업체 엔지니어인 그는 1년전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1등 후보는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신랑 후보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달랐다.

결혼정보업체가 20번 가량의 만남을 주선했지만, 실제로 만난 여성은 3명에 불과했다. 고씨의 이력을 접한 여성들이 '고졸'학력과 '엔지니어'라며 만남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고씨는 "중소기업 사장 아버지를 둔 고교 동창은 1년에 30명의 여성을 만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번듯한 직장인도 짝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결혼 시장의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고씨처럼 생산직 노동자나 버스ㆍ화물차 운전기사 등 '블루칼라'는 더욱 힘들다. 장남에 부모까지 모셔야 하는 조건이라면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짝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1997년에는 39만쌍이 결혼했지만 2007년에는 31만쌍으로 줄었다"며 "10년간 감소한 8만쌍 대부분은 영세ㆍ서민 계층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영세ㆍ서민 계층에서의 혼인이 급감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결혼의 한 축인 여성들의 기대수준이 너무 높아진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본인은 평범하면서도 신랑은 최소 중류층은 돼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여성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업체는 연봉에 따라 신랑 후보를 8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샐러리맨 평균 수준인 2,700만~3,300만원을 받는 사람은 최하위에서 두번째인 7등급이다. 회사 관계자는 "여성 회원들이 워낙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고졸 남성 100명 중 90명은 회원 가입조차 안 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업체 관계자도 "여성들은 능력이나 가정환경이 뒤져도 외모가 뛰어나면 다른 부분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는 입장이며, 이에 따라 결혼을 위해 자기계발 보다는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 등 외적인 경쟁력을 갖추는데 힘쓴다"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 만큼 사회적으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면서 결국 자신보다 학벌 좋고 능력 있는 남성과 맺어져 신분상승을 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실제로 여대생 가운데 상당수는 능력을 키워 스스로 성공하는 것보다 성형 수술을 통해 외모를 가꾸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제결혼이 늘고 있는 것도 영세ㆍ서민층 총각들의 결혼난에 기인한다. 서울에서 버스 운전을 하고 있는 문모(38)씨는 지난해 11월 국제결혼 정보업체를 통해 만난 중국 여성과 결혼했다. 문씨는 "대학도 나오고 4,000만원대 연봉을 받는데도, 결혼정보업체는 회원등록 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장남에다 버스운전사라는 직업 때문에 한국 여성과 결혼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우즈베키스탄 여성과 결혼한 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국제결혼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한 국제결혼 전문 정보업체 관계자는 "국제 결혼은 농촌 총각만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회원 중 농민은 10%도 안되며 대부분 수도권의 직장인 남성"이라며 "요즘에는 '대졸ㆍ연봉 3,000만원 이상'의 남성들이 주로 가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 진단/ "결혼 상품화… 사랑·신뢰 중시하는 문화를"

전문가들은 결혼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기된 이유에 대해"돈이 모든 가치를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결혼과 시장이 동떨어진 말이었지만 요즘은 점점 결혼도 시장 상품처럼 취급되면서 기능적 필요성에 의해 매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역 격차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상류층끼리의 결혼이 이전보다 늘면서 지역 격차가 심화돼 이제는 강남_강북 커플이나 대도시_지방 커플이 크게 줄고 있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돈의 논리에 구속된 결혼에 회의를 느끼고 독신을 택하거나 친구들끼리 모여 살면서 결혼이라는 게임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들은 '기를 쓰며' 자신보다 나은 학력과 재력을 가진 남성을 선호하고, 그것을 갖추지 못한 남성은 '결혼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그런 남성들이 배우자를 맞아들이려 할 때 택할 수 있는 길은 국제결혼 정도"라고 말했다.

곽금주 교수는 특히 일반 남성들까지 국제결혼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을 우려했다.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의 신부를 구하기 때문에 결혼으로 경제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또 "한국으로 시집 온 여성들에 대한 무시와 노동착취 현상이 더 빈번해 질 수 있다"며 "그런 가정은 정상 가정이라고 보기 힘들며, 결혼 뿐만 아니라 결혼생활에서조차 양극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은 무엇일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소득분배를 완화시켜 형평성과 평등의 가치를 높이고 물질만능주의 문화를 타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중ㆍ고교 시절부터 돈보다는 존경, 우정, 신뢰, 사랑 등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필요한 문화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강희경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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