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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14> "가요차트 싣자" 레코드 가게 돌며 협조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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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14> "가요차트 싣자" 레코드 가게 돌며 협조요청

입력
2008.06.2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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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가요 순위 차트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1964년이니까 비교적 일찍 아이디어를 낸 셈이다. 미국 “톱10” 차트는 UPI가 조사해서 보내오니까 그걸 전재하면 되지만 국내 차트는 어찌할까? 고민 오래 할 것 없이 방법이 나왔다. 그 무렵 라디오 방송에서는 청취자들이 보내오는 엽서의 숫자로 순위를 정했지만 나는 디스크가 팔리는 판매 숫자를 종합해서 순위를 정하기로 했다. 60년대 초ㆍ중반에 서울시내에는 레코드 가게가 20개 정도 밖에 안 되었다. 그 나마도 큰 규모의 레코드 가게는 반 정도. 나는 판매점 사장들이 매주 보내오는 숫자를 종합해서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주간한국 신문에 실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레코드 가게 주인들이 의외로 협조를 잘 안 해주었기 때문이다. 협조를 안 하는 이유는 대부분이 역시 귀찮다는 것이고 극히 일부는 가게 매출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 전화를 걸고 우리의 의도를 자세히 설명했다. 순위 차트가 신문에 실리면 판도 더 많이 팔리고 가요계가 활성화도 된다고 말을 했더니 반 이상은 납득을 하는데 나머지 사장들은 막무가내였다.

나는 그들을 일일이 만나기 위해 찾아 나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충무로 1가, 2가를 편의상 명동이라고 부르는데, 그 충무로 1가, 즉 지금 멋들어지게 새로 건물을 지은 중앙우체국 바로 옆에 “신세계”라는 레코드 가게가 있었다. 아마도 서울에서 가장 활발한 레코드 가게가 아닐까 하고 생각 된다.

신세계는 레코드를 파는 곳인데, 레코드를 제작하는 신세기 레코드사하고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 신세계의 사장은 서경술씨라는 분인데, 책을 많이 읽고 음악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박식한 사람이다. 인간성이 좋아서 기자들이나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늘상 그 레코드 가게 안에 있는 사무실에 상주 하곤 했다. 나는 서 사장과 가깝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톱10 문제를 상의 했더니 자기가 몇몇 가게 주인한테 이야기해서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그런 저런 노력 끝에 나는 서울시내에 있는 디스크 판매점을 거의 모두 방문했고, 사장들을 설득해서 협조를 얻어 냈다. 힘이 좀 들긴 했지만 그것은 아주 큰 소득이었다. 최일선에서 고객과 직접 만나는 사람들의 생생한 현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걸 토대로 대중 음악계의 현주소도 많이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여기서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판매된 결과를 어떤 방법으로 신문사에 있는 나한테 전해 주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모든 곳을 매주 찾아 다닐 수는 없고 편지로 나한테 보내면 이틀이나 사흘 정도 걸리고, 그 긴 내용을 전보로 보낼 수도 없고 아주 난처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속으로 웃을지도 모른다. “이 메일이나 팩스로 보내면 되지”라고 생각 하겠지만, 60년대 초ㆍ중반에 무슨…. 전화도 없어서 옆집에 가서 사정을 해 가지고 자물쇠를 열어 한 통화 걸고 난 다음에 전화요금으로 동전 몇 닢을 놓고 나와야 될 때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결국 전화를 이용하기로 했다. 전화가 없는 가게에서는 옆집 전화를 빌리고 그 요금은 우리가 대납해 주기로 하고. 이렇게 해서 “톱10” 차트가 신문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른바 대박이었다. 순위에 오르는 노래가 히트를 하게 되고 신문 판매 부수에도 영향을 주었다. 남과 북의 주제가인 곽순옥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이미자 노래 “동백 아가씨”, 김치캣츠의 노래 “검은 상처의 블루스”,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 남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 성재희의 “보슬비 오는 거리”등등 수많은 노래들이 톱10차트를 장식했다.

국내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까 이번엔 외국 노래가 걱정이다. UPI에서는 매주 어김없이 톱20을 텔레타이프로 보내오는데 오직 제목과 가수 이름만 올뿐이지 가사가 없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 클리프 리차드의 “젊은이들(The Young Ones)” 같은 노래들은 제목만 가지고도 번역할 수가 있지만, “Love Potion No.9”이란 노래의 제목을 번역하려니까 약간 난감했다. 가사도 없고 해서, 나는 이것을 “사랑의 향수 제9번”이라고 번역을 했다. 나중에 가사가 국내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사랑의 묘약 제9번”이라고 고쳤다. 이 때는 라디오 방송이나, 잡지라든가 하는 다른 인쇄 매체들이 주간한국의 톱10차트를 인용했기 때문에 향수와 묘약이 섞여서 사용되었다. 지금도 사랑의 향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적으로 보면 향수가 더 멋있지 않을까.

지금도 내가 기분 좋은 것은 “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노래의 제목을 붙인 일이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 부른 이 노래도 어느날 UPI 통신을 통해서 톱10차트에 영어 제목만 올라 왔다. 아무리 봐도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는데 이게 무슨 堧歐?하고 고민이 되었다. 말썽난 물? 뒤집어진 물? 고민 고민 하다가 그날 저녁 동료들과 막걸리를 마시는데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유레카!”라고나 할까.

나는 이 노래의 제목을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라고 지었다. 나중에 가사가 들어온 뒤에 보니까 내용과 제목이 잘 맞아서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지금도 이거 가지고 자랑을 좀 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한글 제목의 저작권은 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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