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승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66) 전 삼성그룹 회장 등 전ㆍ현직 경영진 8명에 대한 재판이 공전(空轉)하고 있다.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3차례 공판을 거친 지금까지 기소 단계보다 진전된 증거를 전혀 내놓지 못한 채 재판부에 끌려 다니는 형국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특검의 부실한 재판준비 탓에 앞으로 2, 3차례 더 있을 공판도 공전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23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특검 측은 핵심 쟁점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과 관련한 증인신문에서 변호인 측에 번번이 밀리고 있다.
특검 측은 “에버랜드 CB 발행 계획이 비서실의 지시에 의한 것 아니었느냐”는 레퍼토리만 반복하며 “회사가 독자적으로 발행계획을 수립하고 비서실과 사후 협의만 했다”는 변호인 측 논리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검은 급기야 재판 일정상 채택이 보류됐던 증인을 신청했으나 재판부로부터 “입증 취지가 불분명한 데다 수사 때보다 진전된 진술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며 일언지하에 기각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 전 회장의 배임 혐의 입증과 관련해서도 특검 측은 “CB 발행은 지배권 이전을 낳을 수도 있는 문제라 상부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정황 증거만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검과 변호인단 간 토론을 시도하려던 재판부는 “지금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며 토론을 연기하면서 “특검이 철저히 준비를 해 달라”는 주문까지 덧붙였다.
재판정 안팎에서는 ‘특검의 기소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일 공판에서 재판부가 차명 주식거래 과정에서 이 전 회장 측이 내부정보를 이용했을 가능성에 대해 증거조사를 주문한 데 대해 특검 측은 거부의사를 밝혔고, 재판부는 삼성 사건의 주고발인인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과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를 직권으로 증인신청했다.
이날 공판을 지켜본 한 법조인은 “특검과 재판부가 뒤바뀐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증인 신문 과정에서 조 특검이 특검보가 이미 던졌던 질문을 반복해 재판부로부터 주의를 듣는 어이없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또 공판 과정에서 1998년 계열분리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중앙일보 지분 매입에 쓴 141억여원에 대해 “비서실에서 증여받은 돈”이라는 진술이 갑자기 나와 ‘위장계열 분리 의혹’을 뒷받침했지만, 특검은 더 이상 신문을 이어가지 않았다.
변호인이 “홍 회장의 상속재산을 비서실에서 관리해 온 돈인데, 증인이 잘못 진술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유야무야됐을 뿐이다. 4차 공판은 24일 오후 1시30분에 열린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