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복지지출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되, 대신 복지 체계 효율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인 복지지출 증가를 사실상 묶겠다는 것이어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포이즌필(독소조항) 등 기업 경영권 보호장치 도입 방침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3일 공동 개최한 ‘2008~2012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을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논의된 내용은 향후 이명박 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에 적극 반영될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총괄 ▲연구ㆍ개발 ▲문화ㆍ관광 등 3개 분야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며, 27일까지 총 15개 분야에 대한 추가 토론이 진행된다.
■ “복지지출 현 수준 유지”
총괄 분야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향후 재정운용에서 복지지출은 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 상당 부분 견해를 같이 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재정은 세수가 부진한 가운데 재정지출 소요가 증가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경제 지출 비중을 축소하고, 복지 지출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시장 기능을 활용하여 지출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성태 청주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도 “세출 측면에서 복지지출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수요자 중심의 복지체계, 복지전달체계 강화, 복지에서의 민간 역할 확대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박능후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새 정부에서는 취약계층 보호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되 복지 시스템 개선이 수혜자에 대한 복지 서비스 축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화동 재정부 재정정책국장은 “지속가능한 맞춤형 복지 시스템 구축을 통해 복지의 체감도를 제고하겠다”고 했고, 이호승 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복지지출은 제도 도입 이외에도 복지전달체계 개편 등 효율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 “포이즌필, 메가뱅크 반대”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은 ‘성장능력 제고를 위한 재정정책방향’ 이란 내용의 주제 발표에서 “기업의 투자 유인과 무관한 경영권 보호장치 도입 등의 조치는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등 정부는 국내 기업의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을 차단하기 위해 포이즌필, 황금주 등 기업경영권 보호장치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 고 연구위원은 “경영권 보호장치와 기업 투자 활성화는 논리적으로 인과 관계가 없다”며 “미국의 경우 이런 보호장치가 없이도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경영권에 대한 위협이 있어야만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수익성 제고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연구위원은 대형 국책은행을 묶어 파는 이른바 ‘메가 뱅크’ 방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규모 확대로 인해 독점이 강화되고 기술 혁신이나 상품 개발을 등한시하는 경우 대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은행 산업은 아직 대형화로 인한 경쟁력 강화 요인이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 “연구 장비 중복투자 심각”
R&D 분야 토론에서는 정부의 연구 장비 중복 투자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연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무조건 있으면 좋다는 식의 예산 요구와 장비 소유 욕구로 인해 중복ㆍ과다 투자가 만연해 있다”며 “특히 지난해 국가와 공공기관에서 구입한 1만달러 이상 해외 장비가 5,465억원에 달할 정도로 외화 유출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예산 편성 시 연구장비 구입비를 분리ㆍ운영해 중복 투자를 막고, 심의위원회를 통해 국가 R&D 예산 투자 효율성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화ㆍ관광 분야 토론에서는 다양한 문화기술(CT) 육성을 위해 국가 주도의 전담 연구기관 설립이 제안됐다. 김동호 숭실대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문화기술은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문화상품 전반에 활용되는 기술을 의미한다”며 “이 분야에서 선진국과의 격차를 감안할 때 전담연구기관을 통한 국가 주도의 연구ㆍ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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