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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1세대 기자' 루컹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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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1세대 기자' 루컹 별세

입력
2008.06.2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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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도, 중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지만 ‘진정한 언론인’으로 불리던 루컹(사진)이 2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서 89세를 일기로 숨졌다.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루컹이 열흘 전 생긴 폐 혈전으로 고생하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중국의 1세대 기자로 중국 현대사를 풍미한 루컹은 60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대만과 중국 정부 및 지도자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해 ‘진정한 기자’‘전설적인 기자’ 등으로 추앙받았지만 그 대가로 22년간 옥고를 치르는 등 가시밭길을 걸었다.

윈난(雲南)성 바오산(保山) 출신의 루컹은 국민당이 대륙을 통치하던 1940년 중앙정치학교의 저널리즘 과정을 이수한 뒤 중국라디오방송국의 첫 기자로서 제2차 세계대전을 취재했다. 당시 그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더글라스 맥아더 등 미군 최고 지휘관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49년 그는 국민당 기관지였던 중앙일보 부편집장으로, 장제스(蔣介石)의 동서이자 국민당 실세였던 쿵샹시(孔祥熙) 등의 비리를 폭로해 첫 옥고(4년)를 치렀다. 57년에는 철권통치를 하던 장제스 대만 정부를 향해 언론자유를 요구하다 다시 수감됐다. 18년간이나 갇혀 있다 출옥했지만 더 이상 대만에서 언론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78년에는 홍콩으로 이주했다. 81년 격주간 잡지 백성(百姓)을 창간하고 85년 후야오방(胡耀邦)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인터뷰,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루컹은 인터뷰에서 민주화 등 예민한 문제를 거침없이 다뤘고 특히 후야오방을 반대파에게도 관대한 자유주의자로 묘사, 큰 파문을 낳았다. 이 인터뷰는 덩샤오핑(鄧小平)이 87년 후야오방을 실각시키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루컹은 개혁파 지도자 자오쯔양(趙紫陽)의 측근으로 신화통신 홍콩 지국장이던 슈자툰의 미국 망명을 도운 혐의로 90년대 내내 중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생전의 루컹은 “나는 기자와 범인이라는 두 직업인으로 살았다”며 “다음 생에서 직업을 택하라면 다시 기자를 하겠다”고 말했다.

루컹의 호는 대성(大聲)이다. 그는 호처럼 한평생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다 떠났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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