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가 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국제유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요 산유국과 석유 수입국들이 22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모였지만 '네 탓' 공방만 치열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 압둘라 국왕은 이날 개막 연설에서 앞서 약속했던 하루 20여만 배럴을 증산, 하루 970만배럴로 석유생산량을 늘렸다고 밝혔지만 최근의 고유가는 금융 투기와 세금에 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석유 수입국들이 증산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산유국을 압박하고 있는 데 대한 반박이다.
차킵 켈릴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도 "원유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 상태에 있다고 믿는다"며 "공급 부족이 문제가 아니다"며 증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증산 문제는 9월 정례 각료회의에서 다룰 것"이라며 "소비국의 압력에 굴복해 산유량을 무작정 늘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은 원유 공급은 충분하지만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국제 투기자금이 미국 달러의 약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원유 선물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최근 원유 급등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산유국들은 여기에 이란, 이라크, 나이지리아 같은 주요 산유국의 정치적 불안과 일부 국가에서 연료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유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새뮤얼 보드먼 미 에너지장관은 원유 생산이 소비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고유가의 원인이라며 사우디를 포함한 OPEC 회원국이 증산할 것을 촉구했다. 보드만 장관은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석유 수요 증가만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원유 증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수요가 1%늘 때마다 유가는 20%씩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존 립스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는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웃도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세계 경제성장이 큰 지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압박에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이 "수요가 있다면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언급, 증산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OPEC 회원국들은 사우디의 증산 움직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모하마드-알리 하티비 OPEC 이란 대표는 "증산은 OPEC 각료회의 승인 사항"이라며 "사우디가 일방적으로 증산을 결정한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압박했다.
결국 이날 회의는 참가국들이 공동 선언문에서 원유 생산 부문의 투자 증대와 금융시장의 투명성과 규제 향상을 촉구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 달 초 유가가 배럴 당 140달러에 육박하자 사우디아라비아가 긴급 제안해 열린 이날 회의는 산유국과 소비국의 팽팽한 입장차로 유가 상승을 억제하기에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각료급 회의에는 미국 등 주요 8개국(G8)과 OPEC 회원국 및 비회원 산유국, 한국 중국 인도 등 주요 원유 수입국 등 30개국 대표가 참석했다.
정영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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