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정면대응하며 정치학에 접근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내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비판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용기도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1983년 부임,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 퇴임하는 최장집(65)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한국의 정치와 나의 정치학’을 주제로 가진 마지막 강의에서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권위주의 시대였던 80년대 국가의 폭력구조에 대한 비판을, 90년대 이후에는 권위주의 시기에 지역적으로 소외됐던 호남문제를, 2000년대 이후에는 정당으로 대표되는 체제에서 배제된 노동자나 농민 등 소외계층의 문제를 정치하게 분석, 국내 정치학계의 좌장으로 대접 받아왔다.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 탄핵, 개헌논의, 보수정권으로의 교체, 촛불시위 등 그는 한국정치사의 변곡점마다 현실적 발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적극적 사회발언과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친북 좌경학자’로 몰아붙이는 극우언론의 사상검증공세로 과격한 이론가의 오명을 썼던 곤욕을 떠올린 듯 그는 “외부에 비친 이미지는 나의 이념적 정향과 다르다. 나는 온건한 민주주의관을 가진 학자”라고 강조했다. 최근 촛불시위와 관련해서는 “민주화와 민주화 이후의 과정에서 운동을 강조하고 열정을 부추기는 것은 내 역할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며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는 대의적 민주주의 체제이며, 운동이 항시적으로 그 역할을 대신해서 수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제도권 밖의 운동적 열정을 키우는 것보다는 정당정치의 복원과 활성화가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한 긴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내가 스스로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완벽한 정치체제이기 보다는 인간이 실현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좋은 체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민주주의는 무제한적 자유시장에 규율과 규칙을 부과하고, 시장경제가 창출하는 빈부격차와 소득격차에 제약을 발휘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취업경쟁, 시장경쟁,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말한다는 것이 가혹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폭 넓게 공부하며 사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기를 기대한다”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날 마지막 강의에는 제자, 동료교수, 교직원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함께 강의를 들은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정치실종의 시대에, 퇴임하더라도 학문적으로 더 좋은 조언을 해주고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더 큰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퇴임 후 미국 스탠퍼드대와 컬럼비아대에서 한 학기씩 한국정치에 관한 강의를 하고 귀국 후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탐구하는 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