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우리사회가 좌우로 갈려 심각한 이념 갈등을 빚은 데는 인터넷의 영향이 컸다. 최근 비판여론을 끌어내고, 촛불집회로 시민들을 대거 이끌어 낸 원동력도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여론을 주도하고, 21세기의 새로운 소통공간으로 자리잡은 것을 보면 정보기술(IT) 발달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가 실감난다.
그러나 인터넷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경계주의보도 잇따라 울리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출처불명 정보가 대중의 정서를 자극해 순식간에 폭력을 부를 수도 있고, 빠른 확산 속도를 무기로 사회 일각의 주장이 다수 국민의 뜻으로 윤색될 수도 있다. 인터넷이 만든 ‘여론’의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머잖아 ‘네티즌 대통령’을 따로 뽑자는 얘기까지 나올 듯하다.
국내에서 인터넷이 정치적 의사결집과 표출의 수단으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때였다. 그리고 지난 정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던 것도 네티즌이었다. 당시에 이미 인터넷의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무성해졌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급격히 활동성이 커진 것이 시민ㆍ사회단체다. 대부분의 시민ㆍ사회단체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생산ㆍ전달하고, 이로써 여론을 움직여 왔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이나 청계천에서 펼쳐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도 인터넷을 통한 대중 동원의 대표적 사례다. 취임 100일이 조금 넘은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 앞에 두 번씩이나 머리를 숙이도록 하고, ‘강부자’ ‘고소영’ 비난을 받은 내각과 청와대 진용을 교체하도록 하는 등 인터넷은 강력한 힘을 과시했다.
이 대통령의 ‘마이웨이’ 식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 ‘소통의 정치’를 다짐하게 한 것도 인터넷이 주도한 여론이다. 그 여론이 마침내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금지’의 실질적 장치를 확보한 추가협상까지 끌어냈다.
그러나 쇠고기 파동을 통해 인터넷이 우리사회에 던진 우려도 짙다. 일부 반정부 성향 시민ㆍ사회단체는 인터넷을 통해 사실상의 반정부 투쟁에 나섰고, 동조하는 네티즌과 시민들은 거짓정보까지 생산하면서 투쟁 효과 확산을 노렸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주장이 ‘정권퇴진’ 주장으로 변질하면서 뚜렷해진 이런 행태는 집회 주도층의 ‘다른 목적’을 의심스럽게 한다.
생각하며 읽게 되는 신문과 달리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은 즉흥적으로 이뤄진다. 더욱이 정보발신자를 알기 어려운 특유의 익명성은 수용자의 이성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과장ㆍ왜곡 정보의 생산ㆍ전달을 쉽게 한다. 신중한 판단이 설 자리가 없는 반면 유언비어에 가까운 흑색정보가 떠돌아 사회혼란을 부추기기 쉽다. 가장 저급한 인터넷문화이고 그런 사회는 발전을 기약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잘못하면 시민ㆍ사회단체나 네티즌들이 호되게 채찍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얼굴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무조건적 반정부, 반이명박 구호를 전파하는 사이버테러 수준이라면 민주주의가 보장한 자유의 한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인터넷은 국민 스스로가 자유롭게 인격을 표현하는 공간, 올바른 정보를 주고받는 소통의 장임을 새롭게 인식해야만 인터넷문화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아울러 대통령과 정부도 인터넷이 가져다 준 이 시대의 ‘가치자산’이 무엇인지, 사이버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민심’이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재빨리 헤아릴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선진화’의 출발점이다.
권혁철 선진화개혁추진회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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