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현(46)씨는 산소발생기와 정수기 등을 만들어 파는 현대C&M의 영업관리팀장이다. 지난 달 10일 입사해 ‘수습’ 딱지를 달고 있지만 “요즘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며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문씨는 “그 동안 정말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다”며 “지금 일하는 회사에 잘 적응해 오래오래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문씨는 1998년 6월 육군 소령으로 전역했다. 15년 동안 정들었던 군복을 벗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세상은 내편”이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전역 후 모 회사에 과장급으로 들어가기로 했는데, 그 회사가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탓에 입사가 취소됐다.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된 것이다. 고민 끝에 치킨집을 차렸다. 그럭저럭 운영되던 치킨집을 정리하고 친형과 함께 갈비집을 열었다. “장사가 꽤 잘 되더라구요. 그래서 독립을 해 따로 갈비집을 열었죠. 근데 쫄딱 망했어요. 손해만 보고 권리금도 못 받은 채 2년 만에 접었으니까요.”
시련은 계속됐다. 갈비집을 닫고 다시 차린 추어탕집도 얼마 안 돼 간판을 내려야 했다. 곧바로 개업한 호프집도 잘 안됐다. 잇단 창업 실패로 늘어난 건 주름살과 빚이었다. 빚은 어느새 2억원이 됐고, 달마다 이자 갚기도 버거웠다.
장사 대신에 취직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2006년 5월 아는 사람의 소개로 버스회사의 배차과장으로 들어갔다. 1년 계약직이었지만 열심히 일했다. 노력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새벽3시 출근 다음날 새벽1시30분 퇴근’이라는 열악한 근무 조건도 기꺼이 참아냈다. 계약 만료일 바로 전날인 지난해 4월29일, 문씨에게 날아온 건 해고 통지서였다.
억울해 할 시간도 없었다. 갚아야 할 빚과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고용지원센터와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포털 워크넷(www.work.go.kr)에 구직등록을 했다. 그러나 “직업 군인 출신에 장사만 하면 망해 먹는 사람”을 선뜻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나이 제한과 능력 부족 탓이 컸죠. 자꾸 어깨가 움츠러들고 한숨만 나오데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체면도 안 서고….”
같은 해 8월부터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죽어라” 공부했다. 한 달 만에 컴퓨터 활용 능력 2급 자격증을 땄고, 합격율 20%도 안 되는 유통관리사 2급 시험을 3개월 만에 통과했다. 이력서 자격증란을 당당히 채울 수 있어 기뻤다. 잃어버린 자신감도 생겼다. 집에서 노는 아버지의 모습에 실망했을 두 자녀에게 아버지의 힘을 보여준 것이 자랑스러웠다.
땀은 결실로 돌아왔다. 지난달 직원 50여명을 둔 유망한 중소기업의 영업관리팀장으로 들어간 것이다. 컴퓨터와 유통 관련 자격증을 따 놓은 것이 큰 힘이 됐다. 숱한 실패에도 주저앉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좌절하면 끝”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구직자들의 가장 무서운 적은 ‘낙담과 절망’입니다. 역경을 극복하는 건 결국 자기 몫입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
김일환 고용정보원 과장 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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